일러스트=임종철
“4년 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한 정문을 통과해 일터로 나온 것 자체가 감격스럽습니다”(쌍용자동차 강창숙 차체부문 기술주임).
계절의 여왕인 5월에 나온 세 사람의 말은 기업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기업이 경영위기에 빠지면 협력기업들도 부도 위기에 몰리고, 대기업이 잘 나가면 협력사도 호황을 누린다.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회생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던 근로자도 다시 출근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입술이 상하면 이가 시린 것(순망치한, 脣亡齒寒)과 마찬가지 이치다. BC 655년 진(晋) 헌공은 괵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우(虞)나라 우공(虞公)에게 뇌물을 보내 길을 빌려달라고 했다. 바로 임진왜란 때 왜적(矮敵)이 명나라를 치는 데 길을 빌려 달라고 했던 가도정명(假途征明)의 근거였던 가도멸괵(假途滅괵)의 고사다. 당시 우나라의 대부 궁지기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며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보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가도멸괵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간언했다. 하지만 뇌물에 눈이 먼 우공은 길을 빌려줬고, 진 헌공은 괵나라를 멸망시킨 뒤 우나라도 공격해 우공을 포로로 잡았다. 소탐대실한 우공(虞公)은 우공(寓公)이 됐다. 자신도 비웃음의 대상이 됐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도탄에 빠뜨렸다.
반면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즐거워한다(송무백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LGD의 3D 디스플레이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수많은 협력회사들의 실적도 좋아지고, 현대차가 글로벌 5위로 올라서면서 매출액 1조원이 넘는 부품회사가 속출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강조했지만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소, 중견기업 육성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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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반성장이 화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 발전한다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접근방법이 논란이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해서 잘 나가는 기업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뒤떨어진 기업들을 거들어 주는 동반성장이 돼야 상생할 수 있다. 그런데 동반성장이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정책의 상당수는 잘 나가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결과는 뒤떨어진 기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잘 나가던 기업마저 힘들어지면서 공멸로 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논어』자한(子罕)편)는 말이 있다. 대기업에 어려움이 닥쳐 자신이 고통에 직면하기 전에는 잘 나가는 대기업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사람은 현명하지만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했다. 동반성장이 상생보다 공멸로 이끄는 법률과 정책을 만드는 국회의원과 관료들이 역사에서 배우고 현실과 미래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