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블루스] 결혼하면 회사 떠나야... '한 세트'의 비애?

머니투데이 김남이 기자 2013.05.1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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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커플의 절규 '3척 해주세요'…구설수·인사 불이익에 '한숨'

일러스트=김현정일러스트=김현정


"부서가 다르고 하는 일이 달라도 회사에서는 사내 결혼한 두 사람을 한 세트로 봅니다. 그래서 승진할 때 한 사람이 누락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에요."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 이수영씨(가명·28)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다. 예비 남편은 옆 부서에서 일하는 최현수씨(가명·32). 이들은 3년차 사내커플.



이씨는 입사 초기에 퇴근길이 같았던 최씨와 자주 만나게 되며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애사실을 회사 내에서 숨기려했지만 함께 있는 것이 동료들에게 들키면서 커플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었죠. 가만히 있어도 관심의 대상인 신입사원인데, 일 할 생각은 안 하고 연애만 한다고 욕 할까봐 겁이 났었어요."



사내연애를 공개하니 좋은 점도 있었다. 먼저 몰래 만나지 않아도 됐고, 각박한 직장생활에서 서로 활력소가 됐다.

하지만 생활이 무료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이씨의 사내연애는 좋은 가십거리가 됐다. 동료들은 할 얘기가 없으면 괜히 이씨의 연애를 꺼냈다.

한번은 일면식이 없는 타 부서 과장이 이씨에게 내선으로 전화해 '최씨와 사귀냐'고 묻기도 했다. 이씨는 "대답하면서도 '왜 이걸 내가 대답하고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동료들이 종종 너무 사적인 것까지 물어서 당황스러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2011년 잡코리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 중 44.2%가 사내연애를 경험했다. 그 중 62.3%는 '동료에겐 공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우리 주변에 몰래 사내연애를 하고 있는 직장인이 많다는 뜻이다. 사내연애를 비밀로 하는 이유는 이씨처럼 공개되면 '구설수'가 뒤따르기 때문.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하면서 이씨에게 더 큰 고민으로 다가 온 것이 있다. 승진문제였다. 회사에서는 사내커플이 결혼을 하면 암암리에 여자 쪽을 승진에서 누락시켰다.

“부서가 다르고 하는 일이 달라도 회사에서는 사내결혼한 사람을 한 덩어리로 묶어요. 인사철이 되면 선배가 따로 불러내 ‘이번에 승진자리가 하나밖에 없는데 둘 중 한 명이 양보해’라고 하는 거죠. 그러면 대부분 여자들이 포기를 해요. 이번 인사에서도 그렇게 승진에서 떨어진 선배가 있다고 들었어요.”

이씨는 “아무래도 둘이 함께 계속 회사생활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결혼과 함께 이직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의 회사 내에서 결혼한 사내 커플 중 2명 모두 회사에 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최근 각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사내연애나 결혼을 추천하고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사람인 조사 결과 국내 기업 69%가 사내결혼 커플에 혜택을 준다고 했으나 대부분이 ‘축하금’과 ‘화환’이었다. 이것은 사내결혼이 아니어도 직원들이 결혼하면 지급하는 것.

“여자로서 내 연애 이야기가 회식자리에서 ‘안주거리’가 되는 것도 너무 싫은데 승진에서까지 불이익을 받을 까봐 불안해요. 어쩌다보니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회사에 있는 것뿐인데...”

이씨는 사내결혼 때문에 어렵게 들어온 회사에서 떠날 준비해야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결혼 준비, 살림집 마련 걱정에 이직까지 더해져 힘겨워하고 있다.

지난 2월 듀오의 설문조사에서 여성 직장인의 72%가 결혼에 대해 '남성 직장인에게만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결혼을 하면 직장 생활에서 불리함을 느끼는 여성 직장인들. 결혼 상대가 같은 회사 내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지난해 사내 결혼한 한 여성 직장인은 "같은 회사 사람과 결혼을 하면 출, 퇴근을 함께 하고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도 서로 잘 알아 좋은 점도 있다"면서도 "지나치게 사적인 부분에 간섭하거나 알게 모르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여성 직장인들은 결혼과 동시에 가사와 육아, 일 사이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내커플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차별은 그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킨다. 사내커플에 대해선 알아도 모르는 척, 궁금해도 안 그런 척, 봤어도 못 본 척하는 '3척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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