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5살인 강미선 씨. 유명 외국계 회사의 비서실에 근무하는 그는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에 신세 한탄을 털어놓는다. "힘내, 잘 될 꺼야"라는 위로의 말들을 뒤로 하고 "우리나라에 칙릿(Chick-lit)은 없어. 너만 힘든 게 아니고 다들 힘들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대표되는 칙릿. 이 뜻은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속어 칙 (chick)과 문학(literature)을 결합한 신생 합성명사다. 주로 20, 30대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다룬 소설의 주인공들은 유력지의 칼럼니스트(섹스 앤 더 시티), 유명 패션지 인턴(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꽤 괜찮은 직업을 가졌을 뿐 아니라 화려한 외모까지 자랑한다.
강 씨는 8년을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는 자신이 요즘 들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인사에서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이 대리가 과장을 달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를 나와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고 온 이 과장은 7년 만에 외국계 회사 과장을 달게 됐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호주 유학. 1년 동안 죽어라 영어 공부하고 오면 세상은 내 편 일줄 알았다. 이력서 '한 줄'을 더 쓸 수 있게 됐고 토익점수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호주에서도 일용직 노동자로 학비를 버느라 몸만 오히려 상했을 뿐. 강 씨는 나이가 들수록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혔다는 의미의 '골드미스'라는 말은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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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통장잔고는 200만 원. 지난해까지만 해도 적금을 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다. 올 들어 적금이라는 것도 처음 들게 됐다. 비정규직으로 꼬박꼬박 한 달에 50만 원씩 부으면 1년에 600만 원. 서울에 전셋집 하나 마련하려면 10년을 일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것도 속상한데 얼마 전 승진한 이 과장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미선 씨, 이거 남편한테 받은 루이비통 가방인데 어때? 나한테 어울려?"
"미선 씨, 나 이번에 홍콩 출장 가는 길에 이거 사려고 하는데 괜찮아 보여? 미선 씨도 필요한 거 있음 얘기해, 사다 줄께..."
"미선 씨,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 나 옷 봐둔 게 있는데 같이 보러 가지 않을래요?"
아무리 정규직이라 해도 월급 수준 이상의 소비를 하는 것을 보면 그냥 부모, 남편 잘 만나 호의호식하는 팔자가 부러울 따름이다. 이 과장 같은 사람보다 힘들게 살고 있는 30대 여성들이 더 많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강 씨.
실제로 각종 전문직의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지만 지난해 통계청의 조사 발표에 따르면 전체 여성 취업자 가운데 임시 일용직은 49.7%로 남성의 30.6%보다 훨씬 높다. 또 여성 근로자가 평균적으로 받는 임금은 남성의 63.4%로 2001년(64.3%)보다 더 낮아졌다. 지적 능력과는 무관하게 사무실의 꽃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