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상무'·'폭언사원'도 잊혀질 권리는 있다!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2013.05.09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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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클린 2013] 신상털기 등 사이버 역기능 막을 '잊혀질 권리' 법제화 시급

편집자주 머니투데이가 ‘정보사회 新문화 만들기’ 일환으로 [u클린] 캠페인을 펼친지 9년째를 맞았다. 인터넷에서 시작된 디지털문화는 이제 스마트기기로 옮겨가고 있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언제 어디서나 사이버공간을 만날 수 있게 됐고 시공을 초월한 새로운 서비스들도 쏟아진다. 하지만 스마트시대 역기능도 커지고 있다. 악성댓글이나 유언비어로 인한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보안위협 뿐만 아니라 사이버 폭력, 게임 중독, 사이버 음란물 범람 등 각종 사회적 문제에 대한 방지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올해 9회째를 맞은 [u클린] 캠페인은 스마트시대 새로운 윤리의식과 기초질서를 정립하는 데 역점을 두고, 함께 만들어가는 '스마트 안전망'을 제시할 계획이다. 청소년들의 사이버윤리의식 고취를 위해 상반기 청소년문화마당에 이어 하반기에는 글짓기·포스터 공모전을 개최, 청소년이 함께 고민하고 정립할 수 있는 장(場)으로 진화해나갈 계획이다.

'라면상무'·'폭언사원'도 잊혀질 권리는 있다!


#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등장해 '리틀싸이'라는 별칭을 얻은 황민우군 소속사는 최근 네티즌 10여명을 고소했다. 신상털기를 통해 황군의 어머니가 베트남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도넘는 악성 댓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후 소속사에는 해당 네티즌들의 사과 전화가 빗발쳤지만 때는 이미 황군의 상처를 치유하기엔 때가 늦었다.

#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가 북한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회원 1만 5000여명의 이메일 정보를 공개하자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이메일 사용자들의 신상을 털기 시작했다. 그러나 회원 정보의 신빙성과 무관하게 해당 이메일과 관련된 기록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돼 논란이 커졌다.



현대 정보사회의 최대 난적은 바로 사생활 침해다. 특히 최근 인터넷정보공간 어딘가에 남겨진 개인의 정보가 신상털기 등으로 노출되는 피해가 무분별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보화시대가 낳은 '지워지지 않는 기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때문에 이른바 정보의 자기통제권을 의미하는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잊혀질 권리는 한마디로 개인이 원하지 않은 게시물이나 내용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 잊혀질 권리가 왜 필요한가

망각은 인류의 축복중 하나다. 망각으로 인해 우린 과거의 실수를 잊고 새롭게 출발하며 고통스런 기억을 잊고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문제는 정보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부터 지워지지 않는 기록이 망각의 긍정적 효과를 밀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보기술에 의존하면서 개인의 정보들이 인터넷공간 어딘가에 남겨져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누구나 구글링(구글검색을 통한 정보획득)을 통해 사생활이 들춰지고 자신의 정치적성향이나 의료정보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조차 타인에의해 유추되면서 고통받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간단한 검색만으로 과거 SNS 기록은 물론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욕설이나 실수, 결혼 전 여자친구나 이혼한 아내, 사망한 자식이나 친구의 사진과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굳이 들춰보고 싶지않은 기록들이 개인이 의지와 무관하게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 올린 글이라면 삭제할 수있지만 관계를 맺었던 상대방이 올린 것이거나 제 3자에의해 퍼져나간 경우 지우기어려운게 현실이다.

게다가 이는 황민우군이나 임윤택씨 사건처럼 악의적인 신상털기로 인해 확대재생산된다. 최근 일부 신상털기 피해자는 자살하는 등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를 달군 갑을논쟁의 주인공인 라면상무 사건이나 호텔앞 베이커리 대표의 난동에서도 네티즌들에 의해 그들의 신상이 공개됐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자업자득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들이 과연 법적 도덕적 책임을 넘어서 남은평생을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을 정도로 여론의 난도질을 당해야하는지는 따져봐야할 일이다.

이처럼 국내 인터넷의 현실은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이나 통제권이 유명무실한 만큼 '잊혀질 권리'를 법제도적으로 도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인터넷커뮤니티의 라면상무 패러디물. 한 순간의 실수가 평생 주홍글씨를 드리운 것이지만 이에대한 논란도 적지않다. /사진=인터넷커뮤니티캡쳐한 인터넷커뮤니티의 라면상무 패러디물. 한 순간의 실수가 평생 주홍글씨를 드리운 것이지만 이에대한 논란도 적지않다. /사진=인터넷커뮤니티캡쳐
◇ 내 정보는 내가 지울 수 있도록

이와관련 유럽에서는 잊혀질 권리에 대한 법제화가 세계 처음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1월 EU 집행위원회는 인터넷에서 정보 주체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사용자 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시킨 데이터보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유럽연합 거주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업자는 서버가 유럽연합 밖에 있더라도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위반시 100만유로 또는 1년 매출의 2%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릴 예정이다. 다만 개정안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27개 회원국의 정부 대표로 구성된 이사회와 유럽의회의 승인을 거쳐야한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저작물 게시자가 포털사이트 등 온라인 서비스업체에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삭제를 요청할 수 있고 이를 요청받은 서비스 제공자가 확인을 거쳐 즉시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저작권법 일부개정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인터넷상에 게시된 자신의 저작물을 자유롭게 삭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그동안 개인정보의 삭제처리는 사생활침해나 명예훼손 등으로 극히 제한된 만큼 진일보한 조치다.

그러나 국내외 입법역시 다양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가령 저작물삭제는 저작자의 동의가 필요한만큼 사후에는 해당이 안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 지난 2010년 천안함 사태당시 전몰장병 유족들이 싸이월드와 일부 이메일서비스업체에 자식들의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했으나 인터넷업체들은 타인의 계정이용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 잊혀질 권리와 표현의 자유의 충돌

이와관련, 구글의 경우 최근 인액티브 어카운트 매니저라는 휴면계정 관리도구를 출시해 망자의 콘텐츠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이는 사용자가 지정한 기간 동안 계정이 휴먼 상태로 지속되면 계정에 남은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하거나 가족 등 대리인에게 전달하는 기능이다. 이에대해 네이버, 다음 등 국내 포털들은 사망확인서등으로 망인임을 증명할 경우 부분적으로 삭제는 가능하지만 계정을 열람하는 행위 등은 여전히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잊혀질 권리가 필요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나 국민의 알 권리 침해를 막기위해 허용범위를 명확히 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가령 정부당국자나 정치인들이 이를 악용해 정책관련 발언이나 선거공약을 남발한 뒤 추후 이를 삭제할 경우 사회적 혼선이 야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EU의 경우 헌법과 같은 상위법의 국민기본권차원에서 접근하는 반면, 우리는 하위법인 정보통신보호법의 하부조항에서 다뤄져 법적 효력이 뒤질 수 있어 구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현재 국내 개정안은 자신의 게시물만을 대상으로해 EU처럼 제 3자로의 확산방지까지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NHN측은 "정보주체가 가진 정보 통제권을 충분히 행사하는 게 필요하지만 잊혀질 권리를 실제 적용하는 방식이나 범위는 여전히 전세계적인 논란이 많은 만큼 적절한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전략연구소 배운철 대표는 "잊혀질 권리는 오히려 개인의 적극적으로 주장해야할 권리"라면서 "SNS나 포털, 온라인 서비스모두 개인의 정보를 삭제하거나 옮겨갈 수 있도록 할 수단과 방법을 제시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배 대표는 또 "서비스사업자는 개인에 플랫폼을 제공한 것 일뿐 콘텐츠는 어디까지나 개인소유인데도 이같은 기본권리가 그동안 서비스 발전과정에서 간과된 만큼 이제라도 국내서비스 업체가 기술적 조치를 마련해야함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도 잊혀질 권리를 당연한 소비자권리로 보고 정교한 법제화와 정책적 유도에 나서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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