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개 ‘스타트업 비자’ 만들려는 미국, 한국은…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2013.03.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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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40> 한국의 동북아 ‘스타트업 허브’를 기대해보며

미국 상원에서 이민개혁법안 논의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스타트업 비자’ 논의이다.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맨땅에서 이제 갓 시작하는 기업이다. 아직 매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직원 수라고 해봐야 몇 명 되지도 않는다. 그나마 투자를 받아야 상품을 만들어 제대로 시장에 선보일 수가 있다. 걸음마 단계의 기업인 셈이다.



미 상원에서 현재 논의되는 내용은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어도 신분상 제약 없이 이런 스타트업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스타트업 기업가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비자를 만들어 발급하자는 것이다.

스타트업 비자는 공화당 상원의원인 제리 모란이 제출한 ‘스타트업 법안 3.0’에 포함된 것으로, 내용은 이렇다. 대상은 학생비자나 H-1B(전문직 취업비자)로 미국에 와있는 외국인들이다. 이들은 졸업 후에, 혹은 H비자를 발급해준 회사를 다니다 나와서 창업을 하려고 하면, 현행 이민법상 장벽이 너무 높다. 유일한 합법적 방법이 EB-5(투자이민비자)를 발급받는 것인데, 이 경우 적어도 100만 달러(약 11억원)를 투자해야 하고, 2년 동안 풀 타임 근로자를 10명 이상 고용해야 한다. 맨 주먹으로 시작해야 하는 외국인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법안은 이를 대폭 완화했다. 스타트업 비자를 발급 받은 뒤 1년 안에 회사를 설립하면 되고, 만일 10만 달러(약1억1천만원) 이상 투자를 받고, 2명 이상 풀 타임 근로자만 고용하면 비자를 3년 더 연장해준다. 이 3년 동안 적어도 5명 이상의 풀 타임 근로자들을 고용하면 영주권을 신청하는 자격까지 준다. 이런 스타트업 비자를 7만5000개 발급하자는 것이다. “좋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미국에서 창업해서 일자리를 만들려는데 자기네 나라로 돌려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 아니냐”는 것.

만일 민주, 공화 양당이 이 법안에 합의를 하고 4월 상원법사위, 5~6월 상원전체회의 표결을 거쳐 발효가 된다면 외국인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는 획기적인 일이다. 실리콘밸리에 한국인 스타트업 창업가라고 하면, 교포 창업가들 말고는 거의 없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비자문제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는 수 년여 전부터, 실리콘밸리 인사들과 세계적 기업가정신 재단인 ‘카우프만재단’이 스타트업 비자를 발급해야 한다고 제기해왔다. 예를 들어, 유명 스트타업 인큐베이터인 500스타트업 창업자 데이브 맥클루어는 “미국인들보다 더 똑똑한 외국인들이 수도 없이 많다”며 “스타트업 비자라는 아이디어는 우리가 먼저 주장했는데, 칠레와 같은 나라에서 카피를 해서, 지금은 우리 엉덩이를 걷어차고 있다”고 말했다.


칠레는 현재 외국인 창업가들에게 스타트업 비자를 발급해줄 뿐 아니라, 창업가당 4만 달러(약 4500만원)씩 지원해주고 있다. 돈을 준다고 칠레 정부에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도 등에서 미국으로 유학비자나 취업비자로 왔던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칠레에 가서 창업을 하고 있다. 영주권 받아 창업하기 위해 취업비자 상태로 10년 이상 기업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칠레가 ‘칠레콘밸리(칠레+실리콘밸리)’로 불리기도 한다.

카우프만재단은 미국이 7만5000개 스타트업 비자를 발급하게 된다면, 이들이 앞으로 10년간 미국에서 16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멘토인 싱큘래리티대학의 비벡 와드화 교수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칼럼, ‘스타트업이 미국을 구출할 수 있다(Startups will save America)’에서 이민법 개혁을 촉구하기도 했다. “과거 미국이 일본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지금은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 헬스 애플리케이션, 테크놀로지에서 미국의 혁신적인 재기 역시 목격하고 있다. 문제는 허점투성이 이민법이 이런 혁신을 멍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법을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미국의 기업가들은 한때 자신의 급우였고, 동료였던 사람들과 경쟁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외국인근로자 대부분은 저임금 종사자이다. 한국인재들과의 시너지가 없다. 그렇다고 아시아 우수인재들을 붙잡거나, 끌어당길 의지도 없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이미 실패한 ‘동북아 금융허브’의 구호보다 ‘동북아의 스타트업 허브’가 그래도 좀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비자발급에 팍팍한 다른 아시아국가보다 우리가 먼저 스타트업 비자를 만들면 어떤가?

<유병률기자 트위터 계정 @bryu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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