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와 동시대를 살았던 로트렉의 그림 중에는 <숙취>라는 작품이 있다. 여기에는 반쯤 비운 술병이 놓인 테이블에 구겨진 허름한 셔츠를 입은, 고달팠던 하루를 뒤로하고 술로 마음을 달래는 듯한 파리 뒷골목의 여성이 그려져 있다. 너무도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한 그림 속 두 여인은 놀랍게도 수잔 발라동이라는 동일인물이다.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화가의 시선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표현됐다.
각각의 화가들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그녀는 이제 붓을 들고 자신을 직접 그리기 시작한다. 얼핏 인생사만 늘어놓고 보면 그녀의 인생만큼이나 불안한 그림으로 표현됐을 것처럼 추측되지만 그녀의 자화상은 그런 생각을 비웃기나 하는 듯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서 있다.
얼마 전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이 된 딸, 과반이상의 국민의 지지를 받은 최초의 대통령 등 수 많은 수식어를 달고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로 향했다. 그 밖에도 역대 대통령 중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비취지는 대통령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누구에게는 아픔의 기억으로, 누구에게는 불만으로, 그리고 누구에게는 희망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는 한 여인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앞으로 5년 뒤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평가될 것이다. 임기 말년 그녀의 모습이 르누아르가 그린 수잔 발라동처럼 미화되거나 로트렉의 그림처럼 폄하되지 않고 수잔 발라동 자신의 그것처럼 당당함만이 남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