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시장]탈세 적발과 사생활 보호

머니투데이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2013.01.21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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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시장]탈세 적발과 사생활 보호


 과세당국에서 금융기관이 보고한 2000만원 이상 고액현금거래(CTR) 정보를 직접 보도록 허용하는 입법안이 최근 국회에 상정됐다. 이는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제안된 것으로, 조세정의 실현과 과세당국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두고 찬반논쟁이 벌어졌다.

 입법안이 발효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생활 침해 사례를 가정해보자. 과세당국에 근무하는 A씨는 금융정보분석원이 보유한 고액현금거래 자료를 살펴보던 중 평소 약간의 친분이 있는 B씨가 3000만원을 현금으로 은행에 입금한 사실을 알게 됐다.



 B씨의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던 A씨는 탈세를 의심, B씨와 그 가족의 모든 재산과 소득자료를 확인하고 탐문조사까지 실시했다.

 그런데 이 돈은 딸의 결혼식에서 지인들에게 받은 축의금을 한꺼번에 입금한 돈으로 판명됐다. 이 경우 B씨는 아무런 세무상의 위법사항이 없다. 이 경우 과세당국은 합리적인 탈세혐의 없이 B씨와 그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과도하게 침범한 것이 되며 탐문조사 등으로 B씨는 탈세했거나 혐의가 있는 것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반해 과세당국이 금융정보분석원의 고액현금거래 자료를 직접 볼 수 없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이런 사례가 발생하기 어렵다. 금융정보분석원이 1차 분석을 통해 조세범죄 혐의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에 한해 관련 정보를 과세당국에 제공하고 과세당국은 이를 바탕으로 탈세추적에 나서기 때문이다.

 즉 현행 특정금융거래보고법에 따르면 조사대상 거래의 선정자(금융정보분석원)와 조사자(과세당국)가 분리돼 있어 양 기관간 상호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를 경우 과세당국이 대상거래 선정절차에도 관여하게 돼 특정인에 대한 차별적 취급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대해 세무공무원의 직업윤리와 과세당국의 사생활침해 방지절차를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대한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의 권한남용을 막기 위해 그 기관의 내부통제절차와 구성원의 윤리에 의존하기보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 남용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탈세행위가 현금거래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과세당국이 금융정보분석원의 고액현금거래 정보를 좀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금융정보분석원이 보유한 정보는 혐의성이 사전적으로 확정돼 있지 않은 만큼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 대안 중의 하나로 금융정보분석원의 심사기능 확충과 전문성 제고를 제안하고자 한다. 미화 1만달러 이상의 고액현금거래를 보고하도록 하는 미국의 경우 연간 보고건수는 1300만건 정도로 심사인력이 300여명이다.

 이에 반해 연간 1100만건 정도의 고액현금거래와 32만건 정도의 의심거래를 심사하는 우리나라 금융정보분석원의 심사인력은 40여명에 불과하다. 좀더 심사인력을 증원하고 심사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통보거래에 대한 조사와 처리결과에 대한 자세한 피드백이 전제돼야 한다. 즉 과세당국은 어떠한 거래유형이 실제 탈세행위로 판명된 것인지에 대한 자료를 금융정보분석원에 자세히 제공해야 한다.

 이를 받은 금융정보분석원은 이를 분석, 의심거래유형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런 협업체계를 통해 심사의 전문성과 정확성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점은 이러한 협업의 시스템을 법제도적으로 정비, 그 실효성을 보장해야 한다.

 앞으로 현금거래를 통한 악의적 탈세행위를 추적, 탈루세금을 추징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면서도 개인의 금융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은 최소화하는 지혜로운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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