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없어 부도?…회사채 양극화에 中企 공포 눈덩이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전병윤 기자 2013.01.0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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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없어 부도?…회사채 양극화에 中企 공포 눈덩이


자원개발 및 인쇄업체 룩손에너지 (0원 %)는 지난달 28일 27억원 규모의 대출원리금을 갚지 못했다. 이날까지 농협 대출금을 갚아야 했지만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자본의 20%에 달하는 미지급금 소식에 다음날인 2일 룩손에너지 주가는 개장하자마자 하한가로 추락했다.

글로벌 저금리 여파로 시중 여윳돈은 넘치지만 기업은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극심한 안전자산 쏠림현상 탓이다.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 채권 선호도가 약화됐다고 해도 여전히 대부분의 자금이 국채시장에 묶여 있다. 그나마 기업으로 흘러드는 자금도 철저히 대기업 위주다.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는 정부가 직접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섰을 정도다.



◇ 우량-비우량 금리차 반년만의 최대

자금조달 양극화는 'AA' 등급 이상의 우량 회사채와 'BBB' 등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간 금리차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 회사채 금리차는 5.51%포인트로 지난해 8월6일(5.55%포인트) 이후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회사채 금리차는 지난해 초 5.80%포인트로 시작해 점차 격차를 줄이다가 4분기 들어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량 회사채 금리는 내려가는데 비우량 회사채 금리는 오르면서다. 채권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수요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경기 회복세가 기대치를 밑도는 데다 지난해 9월 '웅진사태' 이후 비우량 회사채 수요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3년 만기 BBB- 등급 회사채 금리는 8% 후반까지 올랐지만 이 수준에도 인수처를 찾기 쉽지 않은 분위기다.

위험은 위험대로 떠안으면서 국채에 비해 추가로 챙길 수 있는 금리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게 투자자들의 판단이다. 한 보험사 채권운용 담당자는 "지난해 한때 목표 수익률을 맞추려는 기관투자자들이 몰려들면서 회사채 과열 현상이 빚어졌지만 이제는 금리가 더 오를 때까지 기다리자는 관망세가 짙다"고 말했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신규 발행물의 만기가 짧아지는 것도 기업에는 이중고가 되고 있다. 회사채 시장의 '큰손'인 연기금과 보험 등 기관투자자들이 5년 만기 이상의 회사채를 받아주지 않고 있다.

임정민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우량 중소기업의 경우 회사채 만기가 짧아지면서 차환 부담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조달은 어려워지면서 신용 리스크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건설 등 중소업계 부도 공포

시장에는 이미 중소기업 연쇄 부도 공포가 상당하다. 지난 4일 터진 AJS (0원 %) 부도설도 이런 공포의 연장선에 있다. 회사 자금집행 담당자의 실수로 어음 2억원 집행이 은행 입금 시한을 넘겼지만 다음날 오전 전액 결제 완료했다는 해명에도 시장의 의구심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해명 공시 이후에도 주가는 이틀 동안 10% 넘게 하락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펀더멘탈과 상관없이 투자심리와 수급만으로 주가가 흔들리고 있다"며 "때가 때이다 보니 시장 불안감이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잘 나가던 회사채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장본인격인 건설업계도 살얼음판이다. 웅진그룹 계열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사태 이후 건설사 자금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지난달 비우량 등급(BBB+)으로 강등된 한라건설 (2,420원 ▼25 -1.02%)이 이번주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상환을 앞둔 것을 시작으로 줄줄이 건설업계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한라건설의 경우 내부 현금으로 갚겠다는 방침이지만 시장에서는 뒷수습이 만만치 않다는 데 우려의 시각을 감추지 않고 있다. 당장 1월을 넘기더라도 5월(700억원), 8월(1100억원) 상환이 기다리고 있다. 이달 22일 30억원 등 다음달 22일까지 475억원 규모의 CP(기업어음) 상환도 준비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기업그룹 계열사와 우량 등급의 기업을 제외하면 회사채 발행이 아예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이혁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STX그룹 등이 자금조달을 위해 계열사 매각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런 압박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생색내기 정책 아닌 실질 방안 나와야

회사채 회생 방안으로는 기관투자가의 비우량 회사채 투자활성화, QIB 제도 활성화, P-CBO 발행 확대 및 하이일드 펀드에 대한 정책 지원 등이 거론된다. 다만 그동안 위기 때마다 한 번씩은 시행한 정책이 적잖다는 점에서 생색내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가 대표적인 생색내기 사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마련된 채안펀드는 당시 보험, 은행 등 금융기관이 한국은행의 지원을 받아 10조원을 출자해 만들었다. 높아진 금리에도 불구하고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과 은행을 위해 회사채, 여전채, PF-ABCP 등 부문별로 자금지원이 이뤄졌지만 정작 회사채 매입을 통한 직접 지원은 신용등급 AA- 이상 우량 회사채에만 집중되는 반쪽효과에 그쳤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P-CBO 발행도 낮아진 금리 수준이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적잖다는 지적이다. 2009년 발행해 쏠쏠한 효과를 봤던 3년 만기 신보 제1, 2차 P-CBO는 발행수익률이 각각 4.83%와 4.49%였다. 현재 AAA 등급 회사채 금리는 3.15% 수준이다. 임정민 연구원은 "금리 매력도가 낮아졌다는 점에서 발행 규모와 투자자 확보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구조조정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조건 회사채를 사라고 종용할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신년사 등을 통해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주채권은행의 역할을 더 강화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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