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테마주, '최후의 불꽃' 카운트 다운

머니위크 전보규 기자 2012.11.2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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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대선 일주일 전 하락세 '전례'…아직 2조원가량 '거품'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사이가 되면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는 세계불꽃축제가 열린다. 불꽃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화려한 불꽃의 향연을 보려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사람들은 하늘 높이 솟아 올라 강한 빛을 내며 터지는 불꽃을 보며 환상의 세계에 빠져 감탄하고 감동한다. 또 불꽃을 구경하는 동안엔 이성보다 감성에 사로잡힌다. 1년에 한번 웅장한 소리와 함께 눈부신 아름다움을 뽐내며 하늘을 수놓는 불꽃은 가로등 불빛 정도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선거철이면 국내 주식시장을 한번씩 휩쓸고 지나가는 정치테마주는 불꽃축제와 많이 닮아 있다. 정치테마주는 며칠만에 수십퍼센트씩 오르는 화려함으로 투자자들을 매료시킨다. 몇년만에 대박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은 정치테마주를 사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다. 테마주의 거침없는 상승세를 지켜본 투자자들은 주가가 폭락해도 관련 정치인의 말 한마디면 다시 급등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더불어 이성은 마비돼 투자손실에 대한 우려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격하게 움직이는 주가 그래프를 보며 흥분한다.



불꽃과 정치테마주는 가장 높은 곳에서 불타올라 없어진다는 점도 닮았다. 불꽃은 오를 수 있는 최대 높이에서 산화하고 정치테마주는 선거 직전 정점에 올랐다가 선거가 끝나면 폭락한다. 지난 대선에서 정치테마주들은 이런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이제 한달도 남지 않았다. 정치테마주 불꽃놀이의 절정과 결말이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패배=주가급락

국내 증시에서 정치테마주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2002년 제16대 대선을 보면 선거에서의 패배는 정치테마주의 급한 내리막을 뜻한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충청권 수도 이전 계획'을 내세웠고 이 공약은 수많은 테마주들을 만들었다. 계룡건설과 영보화학, 한라공조, 충남방적, 우성사료 등 충청권에 본사나 공장을 두고 있는 기업들이 테마주로 떠올랐다. 남북경제협력 활성화 기대감에 현대건설과 현대상선, 신원 등도 주목을 받았다.


노 후보와 경쟁한 이회창 후보의 아들 정연씨가 대주주의 조카사위인 것으로 알려진 통신장비업체 단암전자통신과 한나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근혜 의원의 동생 지만씨가 대주주인 EG도 테마주에 이름을 올렸다.

16대 대선의 테마주들은 선거가 끝난 다음날 관련 정치인과 운명을 같이 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테마주들은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큰 폭의 오름세를 기록한 반면 이회창 후보와 관련된 종목들은 하한가로 내려앉았다.

대선 투표일 전날, 노 당선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대주주인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도 내림세를 피하지 못했다.

노 대통령 당선 직후 급락세는 피했지만 관련 테마주들의 흐름은 순탄치 못했다. 충청권 수도 이전 공약을 법제화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고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관련 테마주들은 심한 부침을 겪었다.



◆선거 D-7, '주가절벽'

제17대 대선 때 등장한 정치테마주들은 결과에 관계없이 폭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락세는 선거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시작됐다.

이명박 당시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으로 테마주에 합류한 이화공영, 삼호개발, 특수건설은 선거 직전 고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7년 첫거래를 2095원에 시작한 이화공영은 줄곧 2000원대에 머물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로 확정된 8월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상승세를 탔다. 8월1일 2665원(종가 기준)이던 주가는 2425.3%란 상승률을 기록하며 대통령 선거를 10여일 앞둔 12월7일 그해 최고점인 6만7300원까지 뛰어올랐다. 이화공영은 이후 6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비롯해 13거래일 동안 총 9번 가격제한폭까지 주저앉으면서 1만5900원까지 내려왔다.

특수건설과 삼호개발도 12월7일 연중 최고점을 기록한 뒤 급하게 거품이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 세 종목의 주가는 선거가 끝난 뒤 7거래일 후 최고점보다 평균 57.93% 내려왔다.



◆거품, 최소 2조원 남아

이번 18대 대선과 관련한 정치테마주들은 금융당국이 각종 대책을 내놓으면서 어느 정도 거품이 빠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주식시장에서 테마주로 분류된 134개 종목의 주가를 살펴본 결과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인 작년 6월 초 7조4167억원이었던 이들 종목의 시가총액은 한때 19조9634억원까지 커졌다가 지난달 중순 9조9759억원까지 줄었다.

과열된 테마주 열기를 타고 불어났던 거품이 10조원가량 빠진 것이다. 테마주를 거래하는 주체가 대부분 개인이란 점을 감안하면 개인투자자들은 이 기간 동안 10조원의 손실을 떠안은 셈이다.

거품이 어느 정도 빠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테마주 전체로 보면 2조5000억원가량의 거품이 아직 남아있고 개별 종목으로 살펴보면 급하게 꺼질 거품은 더욱 크다.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되는 우리들생명과학 (560원 ▲34 +6.46%)의 주가(11월22일 기준)는 2565원으로 작년 6월1일 종가와 비교해 584%, 우리들제약 (5,560원 ▼30 -0.54%)은 356.94% 올라 있는 상태다. 같은 기간 박근혜 테마주인 에스코넥 (1,986원 ▼14 -0.70%)과 안철수 테마주 써니전자 (1,951원 ▼4 -0.20%)는 각각 402.69%, 357.24%의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이들 종목이 테마주 광풍이 불기 전 수준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주가가 현재의 4분의 1 이하로 내려와야 한다.

이밖에도 주요 테마주로 거론되는 하츠 (5,130원 ▲10 +0.20%), 바른손 (1,470원 ▼24 -1.61%), 조광페인트 (6,620원 ▼260 -3.78%), 신일산업 (1,748원 ▼15 -0.85%), 안랩 (63,500원 ▼1,300 -2.01%), 오픈베이스 (2,575원 ▼10 -0.39%) 등도 지난해 6월과 비교해 각각 100~200%가량 주가가 치솟아 있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이번 대선 테마주들도 지난 2007년 정치테마주들과 유사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과거에는 대통령 당선 후 덕을 볼 것으로 기대되는 종목으로 투자자들이 몰리는 경향이 더 강했지만 올해에는 급등락하는 주가를 쫓아 수익률 게임에 참여한다는 인상이 강해 선거일을 전후해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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