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주와 가치주,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대해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2012.11.0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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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19>

성장주와 가치주,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대해


태초엔 가치주만 있었다. 성장주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성장주(growth stock)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T 로우 프라이스는 1939년 '성장주 고르기'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면서 "Growth"에 따옴표까지 붙였다.

프라이스는 성장주를 순이익과 배당금이 꾸준히 증가하는 주식이라고 정의했는데 (1)뛰어난 경영진 (2)경기변동에 민감하지 않은 분야에서의 독점적 지위 (3)매우 높은 수익성, 이렇게 3박자를 다 갖춘 기업의 주식이라고 했다.



그 이전까지는 시장의 추세를 추종하는 모멘텀 투자가 대세였다. 하지만 시세조종 세력이나 프로 트레이더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보니 여기에 맞서 기업에 눈을 돌린 것이 가치투자였다. 문제는 주식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느냐는 것이었는데, 1929년 주가 폭락을 계기로 월가에서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정의를, 상아탑에서는 어빙 피셔의 정의를 받아들였다.

그레이엄은 1934년에 발표한 저서 '증권분석'에서 기업의 자산가치에 기초해 안전마진이 큰 주식, 즉 당장 망해도 받을 수 있는 청산가치보다 현재 주가가 현저히 낮은 기업의 주식을 가치주라고 했다.



반면 피셔는 1930년 출간한 '이자론'에서 "가치란 소득을 자본화한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것이 주식의 가치는 미래 소득흐름의 현재가치라는 배당할인모델(DDM)인데, 전문가들은 이 방식을 이해하는지 여부에 따라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기도 하고, 배당금 지급능력에 관계없이 무조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희망만으로 주식을 매수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1950년대 들어 필립 피셔의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가 나오면서 미국 주식시장은 성장주 열풍에 휩싸였는데, 그러자 투자이론가 피터 번스타인은 1956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성장주와 성장기업'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성장주란 뒤돌아볼 때만 비로소 드러나는 주식이다. 지나고 보니 많이 오른 주식이 성장주다."

한마디로 성장주란 그림자 같은 것이라는 말인데, 번스타인은 성장주와 구별되는 성장기업을 제시했다. 성장기업이란 순이익이 늘어나되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수동적인 이익이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이익이며, 월등한 수익창출능력을 가진 기업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휴대폰이나 인터넷시장의 성장에 편승하는 게 아니라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내놓는다거나 완전히 다른 검색기술을 제공하는 애플이나 구글 정도가 될 것이다.


월가의 손꼽히는 헤지펀드매니저 바턴 빅스는 2006년에 출간한 저서 '투자전쟁'에서 투자의 세계에는 세 가지 종교가 있으니 성장론과 가치론, 불가지론이라며, 본인은 가치투자자지만 불가지론 성향도 조금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요지는 이렇다.

성장주를 신봉하는 투자자들은 좋아보이는 주식이면 아무리 비싸도 사려고 하며, 한번 사랑에 빠지면 영원히 가져간다. 반면 가치투자자는 어떤 기준으로든 싼 종목을 고집한다. 그래서 저평가(Undervalued)돼 있고, 대중이 갖고 있지 않으며(Underowned), 시장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Unloved) "3U"(삼류가 아니다!) 주식을 매수한다. 불가지론자는 투자사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일시적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성장주가 상대적으로 싸고 좋으면 성장주를 매수하고, 가치주에 비해 성장주가 너무 비싸지면 가치주를 매수한다.

그런데 벌써 110년 전에 찰스 다우는 이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는 1902년에 이렇게 썼다. "기업의 가치가 주가를 만들고, 순이익이 가치를 만든다. 배당 가능한 순이익의 안전마진보다 더 주식을 강하게 하는 것도 없고, 배당금의 안정성에 대한 의심보다 더 주식을 약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그렇다. 기업 실적이 가치주도 만들고 성장주도 만든다. 관건은 투자수익률이다. 성장주냐 가치주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이런 개념이 나왔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쳐다봐서는 안 된다. 내가 보기에 가치주와 성장주는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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