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채용 저소득층 220명 면면보니…'파란만장'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서명훈 기자 2012.11.01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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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채용' 대한민국을 바꾼다]"가난 대물림 끊어야"...5천명 채용, 양극화 완화하자

삼성 채용 저소득층 220명 면면보니…'파란만장'


"대학에 직접 찾아와서 총장 추천을 받아 입사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저소득층 채용에 신경을 쓸 줄은 몰랐다."

유복한 가정에서 외국 유학이나 해외연수를 다녀온 사람들만이 입사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 적극적으로 취업의 문을 연 데 대한 저소득층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남들이 다 쌓는다는 '스펙'을 쌓지 못한 불리함으로 아예 지원조차 꿈꾸기 힘들었던 대기업 취직의 문호가 처음으로 '할당제'를 통해 열렸다.
올해 처음으로 실시된 '함께가는 열린채용'의 일환으로 삼성이 '저소득층 5% 채용'을 실시, 31일 220명의 저소득층 대학 졸업생들이 선망의 대상인 '삼성맨'이 됐다.



올 하반기 삼성의 3급 사원(대졸에 준하는 직급) 저소득층 특별전형에 합격한 신입사원들의 면면을 보면 짧지만 파란만장한 '220가지'의 인생의 굴곡과 색깔이 녹아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 손에서 자라나 고등학교 때 암으로 인생의 절망을 맛보다가 이를 이겨내고 대학 4년 장학생으로 졸업한 학생, 장애를 겪는 부모님을 간호하며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학생, 가정폭력에 할머니의 병원비로 빚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취업준비생 등.



'가난했지만 결코 꿈을 잃지 않았던' 이들에게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대기업에 취직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저소득층 신입사원들은 사회가 노력하는 자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고, 이런 분위기가 사회전반으로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다.

◇가난의 고리를 끊을 희망 사다리 '희망채용'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올 1학기 기준 4년제 대학 전체 재학생은 204만명.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학생 비율은 전체의 4.1%인 8만 3655명이다. 대학생 100명 중 4명이 취약계층이다. 이 가운데 한해 졸업생은 2만명 내외로 추정된다.


이들 중에는 현재 자신들이 처해 있는 환경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기업 인사 담당자는 "저소득층이나 지방 학생들은 좋은 부모 밑에서 해외유학이나 연수 등을 다녀온 스펙 좋은 학생들이나 대기업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처우가 좋은 기업들이 '스펙'을 채용기준으로 삼게 되면 저소득층 졸업생들은 상대적으로 저임금의 직장을 택함으로써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로 빠져들게 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 저소득층 채용비율을 할당하는 '희망채용'이다.

◇30대 기업과 공기업이 5%씩만 채용하면, 바뀌는 세상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30대 그룹의 총 채용 규모는 13만 5000명이다. 이 가운데 고졸 신입사원 채용 4만 1000명을 제외한 9만 4000명이 대졸신입 사원채용 규모다.

30대 그룹에서 저소득층 희망채용에 5%씩만 할당할 경우 약 4700명을 채용할 수 있다. 공기업까지 동참한다면 5000명을 넘게 된다.
한 기업의 고위 임원은 "전체 2만명 내외의 저소득층 졸업자 중 약 4분의1을 대기업에서 수용할 수 있다"며 "여기에 공기업 등에서도 5% 채용에 나서면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저소득층의 비율을 낮추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의 대기업 채용 문호를 확대할 경우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정부지원금(월 약 40만원)을 줄이는 부수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저소득층 자녀가 대기업에 취업할 경우 생활 소득이 높아져 기초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다. 30대 그룹에서 4700명을 채용할 경우 225억원 가량의 정부 복지재원 절감효과도 있다. 공기업까지 확대하면 그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세금을 절약하고 중산층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갈등 해소 위한 민간운동 필요

저소득층 채용은 1명의 자녀가 대기업에 취직함으로써 한 가정의 가계를 살리는 효과를 통해 계층간 간극을 좁히자는 취지다. 또 다른 '역차별'을 하자는게 아니라 출발점부터가 달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에 참여할 수 없는 계층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사단법인 사회갈등연구소(www.socon.re.kr)의 조성배 선임연구원(박사)은 "어렵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나 지방대와 수도권간 보이지 않는 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할당채용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채용이나 승진 등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이 높았고, 공기업 등은 '철밥통'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공기업이나 이름 있는 기업이 사회적 갈등과 차별을 해소를 위해 이런 역할을 더 앞장 서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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