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만난 김대중과 장개석 그리고 김정일

머니투데이 베이징=홍찬선 특파원 2012.09.1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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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왜, 서울이 아닌 베이징에서 만났을까?

중국에서 만난 김대중과 장개석 그리고 김정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장졔스(蔣介石) 전 타이완(臺灣) 총통, 그리고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서로 다른 시기, 각각 다른 장소에서 살아 서로 만나기 쉽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한 시대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 세 사람이, 최근 중국에서 독특하게 해후하고 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이들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 것은 책이라는 역사적, 문화적 표현양식.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 중국어 판이 지난 9월 초, 『金大中自傳』이란 제목으로, 인민대학교출판부에서 나왔다.



이보다 한 달 전인 8월에는 미국의 제이 테일러(Jay Talor)가 쓴 『장개석과 중국 근대화를 위한 투쟁(The Generalissimo; Chang Kai Shek and Struggle for Modern China)』이란 책이 중국어로 번역됐다. 중국어판 제목은 『蔣介石輿現代中國』(中信出版社).

또 한달 전인 7월에는 『金正日輿朝鮮』(新華出版社)이란 책이 나왔다. 오랫동안 평양특파원을 지낸 까오치오푸(高秋福) 전 신화사 부사장이 썼다. 자신이 직접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북한에 대해 취재한 것과 다른 신화사 평양특파원들이 썼던 기사들을 종합해서 만든 책이다.



중국에서 만난 김대중과 장개석 그리고 김정일
두 달 간격을 두고 이들 세 사람이 중국에서 만난 이유는 이렇다. 인민대출판부는 “수차례에 걸친 죽음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지켜 한국의 민주화를 정착시킨 정신을 배우기 위해 『김대중 자서전』을 중국어로 출판했다”고 밝혔다. 남북으로 분단된 ‘조그만 나라’의 대통령이 ‘대국굴기(大國?起)’를 추구하는 중국에서 아직 받지 못한 ‘노벨상’을 받은 것에 대한 부러움과 향후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인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중국에서 만난 김대중과 장개석 그리고 김정일
타이완에서 이미 중국어로 번역, 출판된 테일러의 책, 『장개석과 중국 근대화를 위한 투쟁』을 중국본토에서 출판하기 위해 힘쓴 사람은 유명한 중국역사학자, 양톈스(楊天石)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장졔스와 관련된 책을 이미 몇 권이나 쓴 양 교수는 중국어판 추천사에서 “테일러가 사실(史實)에 충실하면서 장졔스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하고 있다”며 번역본을 꼭 읽어보도록 권한다.

‘반역의 피’로 젊은 장교시절, 모스크바를 다녀올 정도로 공산주의에 긍정적 태도를 보였던 장졔스. 국민당 최고직에 오른 뒤에 일본을 격퇴하고 마오저둥(毛澤東)의 공산당과 중국 지배권을 놓고 한판을 벌이다 부패로 인해 타이완으로 쫓겨난 그의 삶을 통해, 부패로 얼룩진 현재 중국공산당을 고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는 것을 표현한 셈이다.


중국에서 만난 김대중과 장개석 그리고 김정일
『김정일과 북한』의 저자, 까오치오푸는 “‘신비한’ 국가로 남아 있는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개혁과 개방에 소극적일 때 급변하는 세계무대에서 어떻게 외톨이가 되고 국민들이 어렵게 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기득권층으로 변하고 있는 중국 지배층에게 지속적 개혁과 개방을 촉구하기 위한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현대사에서 중요한 등장인물인 세 사람이 중국에서 만난 것을 보고 가슴이 아려왔다. 한국에선 아직 불가능한 이런 만남이 베이징에선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사실, 사상 통제가 강한 중국에서 한 때 가장 큰 ‘적’이었던 장졔스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언제쯤 그런 정도의 버퍼가 생길까 하는 부러움, 70년 동안의 분단으로 섬나라로 고통 받는 한국이 대륙과 해양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때가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는 꿈이 함께 섞여 응어리로 뭉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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