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유명 연예인 홈피 보던 20대, 충격에…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12.09.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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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열전]<8>소셜벤처 시지온 김범진 대표와 직원들

편집자주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설계사들이 있다. 이들은 불평등·환경훼손·인권침해·동물학대 같은 사회 문제를 사회적기업·협동조합·비영리단체·기업의 사회적책임 같은 활동을 통해 해소하자고 나선다. 사회를 바꾸는 아이디어의 실행자,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들을 머니투데이가 소개한다.

↑김범진 시지온 대표 ↑김범진 시지온 대표


국내 2만2000개 사이트가 이 서비스를 쓴다.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 등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통해 달리는 댓글 4개 중 3개가 이 서비스를 거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셜벤처 시지온(www.cizion.com)이 개발한 소셜댓글 서비스 '라이브리'다.

강점은 악성댓글 정화 기능이다. 라이브리가 설치된 모든 사이트에서는 스팸·악성댓글을 자주 다는 SNS 계정이 자동 차단된다. 서비스 이용 사이트가 늘수록 스팸·악성댓글 차단기능이 더욱 강력해지는 구조다. 라이브리 가입 사이트 내 스팸·악성댓글 비율은 지난 1월 52.5%에서 지난달 4.9%로 급감했다.



이 서비스는 탄생한 계기가 남다르다. 한 유명연예인의 자살 사건이 창업 동기가 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는 '말이 죽일 때(When Words Kill)'라는 기사에서 '한국의 무자비한 인터넷 문화의 징후'라고 표현한 사건이었다.

◇연예인 자살 이끈 방명록 분석하다 충격 = 2008년 10월, 당시 연세대에서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듣던 시지온의 김범진(27) 대표와 김미균(26) 마케팅 이사는 수업 과제로 이 연예인의 미니홈피 방명록을 분석했다. 방명록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내용이요? 무엇을 상상하시든 그 이상이었습니다. 크게 반성했죠. 저도 그전엔 막연히 '그럴(악성루머가 퍼질) 만 했겠지' 했거든요. 근데 방명록에 가보니 대부분이 근거 없는 '묻지 마 욕설'이었어요. 60%가 성(性)적인 욕, 30%가 가족 욕이었어요."

두 사람은 악성댓글을 없애고 싶었다. 인터넷 실명제 등 법이나 처벌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악플러(악성댓글 유포자)들 중엔 남의 주민등록번호 사용자가 상당수기 때문이다.

로런스 레식 미국 하버드 법대 교수의 연구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어떤 문제를 풀 때 규범으로 접근하는 건 해결 효과가 미비했다. 시장으로 접근하면 부작용이 컸다. 법은 늘 맨 나중에 작동했다. 레식 교수의 결론은 모든 문제 해결은 구조적인 것에서 먼저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대중화된 지 10년이 넘은 때였어요. 그렇지만 댓글창 서비스만은 10년 전 모습 그대로였죠. 댓글창 구조가 바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삽질' 끝에 얻은 통찰, 서비스에 담아 = 김 대표와 김 이사는 사업 개발 전에 사업자등록부터 냈다. 온라인 세상의 문명화에 기여하자는 뜻으로 회사 이름은 '시지온(cizion)'이라고 지었다.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이라는 전략게임에서 영감을 얻은 말이었다.

무일푼이었던 이들은 연세사이버커뮤니케이션랩(YCCL)의 윤영철 교수를 찾아갔다. 무작정 '악성댓글을 없애고 싶으니 석박사 인력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윤 교수가 협력을 약속했다. 이어 지인 사이에서 개발 실력이 출중하기로 알려졌던 박용재(32) 개발이사가 합류했다.

"그 다음엔 삽질의 연속이었어요. 댓글 작성 후 다른 사람들의 추천을 받지 못하면 저절로 없어지는 서비스 등 수차례 실패 끝에, 안 좋은 댓글을 지우는 대신 좋은 댓글을 많이 달게 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죠. 그렇게 나온 게 '라이브리'였습니다."

라이브리가 적용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댓글을 달려면 그는 자신의 SNS로 로그인해야 한다. 또, 그가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댓글은 자동으로 자신의 SNS에 올라간다. 자신의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근거 없이 막말을 해대기란 쉽지 않다. SNS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그가 쓴 글, 그가 맺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김 대표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자유를 보장하려면 내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며 "그러려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즘 시지온은 YCCL의 연구결과를 반영해 라이브리에 '나와 다른 의견 보여주기' 기능을 추가 개발하고 있다. 댓글을 최신 작성 순으로 보여주면 댓글로 형성된 다양한 여론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 기능이 개발되면 좀 더 다양한 의견이 댓글로 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큰 자유 만들려 돈을 버는 소셜벤처 = 최근 시지온엔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방문이 늘었다. 이들의 서비스에서 재무적 성장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10억 원을 투자해 50억 원으로 부풀려 가져가겠다는 식의 투자는 받고 싶지 않다"며 "우리의 사회적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찾은 방법 중의 하나가 사회적기업 또는 소셜벤처"라고 말했다.

벤처기업이 첨단의 신기술과 아이디어 즉 혁신을 통해 신사업에 도전하듯, 소셜벤처는 혁신을 통해 사회 문제의 해결에 도전한다.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지배구조, 수익의 재투자 혹은 사회적 배분도 일반벤처와는 다른 점이다.

"우린 돈을 위해서 라이브리 서비스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더 자유로운 사회적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라이브리를 형성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아름다운 코드들은 이런 고민과 수많은 시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김범진 시지온 대표(왼쪽에서 네번째)와 직원들. ⓒ임성균 기자 tjdrbs23@ ↑김범진 시지온 대표(왼쪽에서 네번째)와 직원들. ⓒ임성균 기자 tjdrbs23@

[팁] 김범진 시지온 대표가 말하는 소셜벤처 창업 노하우

시지온은 SNS로 악성댓글을 퇴치하겠다는 아이디어로 2010년 고용노동부 주최 소셜벤처경연대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소셜벤처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김 대표는 "해결하고 싶은 사회적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명확하게 규정하라"고 조언했다. 연세대에서 화학공학과 벤처학을 전공하다가 창업한 그는 이번 달에 졸업장을 받는다.

1. 내가 관심을 가진 사회적 문제가 정말 중요한 것인지 충분히 생각한다. 미국 학부모가 MIT보다 선호하는 우스터폴리테크닉대학(WPI)은 학생이 입학하면 한 학기 동안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서만 토론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뭔지 명확해진다. 그러면 해법도 명확해진다.

2. 그 문제의 해결을 원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파악한다. 시지온은 악성댓글 피해가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 개인한테도 미치고 있는 것을 보고 댓글창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서비스를 생각했다.

3. 문제의 해결에 어떤 기술이나 혁신이 필요한지 깊이 고민한다. 시지온은 창업 초기부터 연세사이버커뮤니케이션랩과 사이버커뮤니케이션 컨퍼런스를 열면서 연구 성과를 서비스와 디자인, 기능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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