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벨]부실 PF시장의 가격 딜레마

더벨 백가혜 기자 2012.08.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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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벨노트]

더벨|이 기사는 08월24일(08:40) 자본시장 미디어 '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1조 원 이상의 부실 PF채권을 보유한 농협이 얼마전 공개경쟁 입찰에서 고양시 덕이지구의 준공후 미분양 아파트 채권 매각을 시도했다. 농협이 보유한 PF채권 원금은 약 2000억 원이며, 제시한 최저입찰가(MRP)는 46% 수준이었다. 그러나 입찰에 참가한 유암코가 써낸 가격은 38% 수준. 결국 해당건은 유찰로 귀결됐다. 매각은행과 투자자간 부실PF채권 가격 평가의 '간극'을 드러내는 예다.



공개경쟁 시장에서 입찰이 무산되는 사례는 빈번하지만 부실PF채권만큼 매각자와 투자자 사이의 가격차가 큰 물건은 없다. 매각 가격은 주로 회수율 또는 분양률, 할인율에 따라 결정된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미분양 물량이 적체된 시장 기조가 가격 측정의 어려움을 유도한다는 설명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대형 은행과 자문사를 낀 매각 구조에서 빈번한 실패는 곧 인력과 비용의 손실이자 비효율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이번 농협의 사례처럼 은행과 투자자 사이에 회계법인이 두 곳이나 끼어 있을 경우 실사에 참여한 회계법인의 손실은 더욱 크다.

그간 우리은행은 과거 PF대출의 부실을 털어내기 위한 매각에 수차례 난항을 겪어왔다. 우리은행이 생각하는 PF채권의 가격과 투자자가 제시한 가격 사이의 괴리가 커 하나의 채권이 여러번 유찰되기도 했다. 결국 우리은행은 시장에서 해당 채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평가 가격이 수차례 노출되고 난 뒤에서야 PF채권의 매각을 성사시켰다. 현재는 2000억 원 규모의 부실PF채권만이 우리은행 장부에 남았다.



유찰된 후 재매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가격을 높이기 위한 매각자의 노력은 계속된다. 태핑을 통해 원하는 투자자를 찾아 가격을 더 높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미 유찰된 매각 건에서 투자자가 높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지 않는 한 유찰된 제시가격 이상의 금액으로 계약이 성사되는 경우는 드물다. 농협의 경우처럼 충분한 대손충당금을 쌓지 않아 매각을 포기할 수도 있고,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장부에서 부실채권을 제하고 자산건전성을 강화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인지에 대한 답은 없다.

요즘 같은 부동산 불황기에 부실PF 경매 시장은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이다. 투자 수요도 없는데다 그나마 있는 투자자는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인 셈이다. 결국 선택의 몫은 은행에게 있다. 금융당국에서 부실PF채권을 최대한 많이 정리하도록 은행들에 주문하자 은행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농협과 같이 부실채권 비율이 2%(국내평균 1.49%)를 넘고 부실PF채권 보유량이 국내은행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라면 선택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야 할지 판단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농협은 향후 정상화뱅크를 통한 매각 계획만 세우고 있다고 답한다. 1조 원 이상의 PF채권을 정리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건전성 강화에 대한 답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할인분양을 시도했지만 회수가 어려웠던 물건은 새로운 가격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부동산 시장이 갑자기 살아나지 않는 한 더 높은 시장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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