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채 원금상승분 과세 강행 "시장 죽일 셈이냐"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2.08.0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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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세법개정안]과세때 상품매력 '뚝', 인플레이션 헤지수단 물건너가

"물가연동국채(이하 물가채) 발행이 중단될 수도 있다."

정부가 물가채 원금상승분에 대해 과세키로 하면서 시장 고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8일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물가채의 원금증가분에 대해 2015년부터 이자소득세가 부과된다. 또 만기 10년 이상 장기채권의 이자소득에 대해 신청할 수 있는 30% 분리과세도 채권을 3년 이상 보유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물가채는 물가가 올라가는 만큼 원금이 늘어나고 표면금리에 따라 6개월마다 이자를 지급받는 상품이다. 물가가 올라 실질이자율이 떨어지더라도 원금의 실질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어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헤지 상품으로 통한다. 이를테면 1억 원을 물가채에 투자했을 때 물가가 연평균 4%씩 올랐다면 10년 뒤 만기 때 원금이 1억4000만원으로 불어나는 식이다.

그동안 정부는 원금증가분 4000만원에 대해 세금을 걷지 않았다. 6개월마다 지급되는 연 1.5%가량의 이자에 대해서만 15.4%의 세금을 원천징수했다.



물가채는 10년물로 발행되기 때문에 30%의 분리과세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도 투자자 입장에선 매력적인 부분으로 작용했다. 이자와 배당을 더한 연간 금융소득이 4000만원이상이면 4000만원을 넘는 초과소득을 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과 합쳐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야 하고 이 경우 소득 수준에 따라 최대 41.8%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물가채 투자자가 분리과세 신청을 하면 금융소득종합과세에서 빠진다.

정부가 이번에 원금증가분에 대해 과세키로 한 것은 그동안 소홀했던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방안을 찾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국, 캐나다에서도 물가채의 원금증가분에 대해 이자소득으로 과세하고 있다"며 "30% 분리과세까지 가능해 혜택이 과도하다는 점에서도 다른 채권과의 형평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불만을 넘어 물가채 시장이 채 꽃 피기도 전에 말라죽을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 채권 전문가는 "물가채가 발행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원금상승분에 대한 비과세' 혜택인데 이게 사라지면 금리 1%대 상품에 누가 투자하겠나"며 "2008년 물가채 발행 중단 사태가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있겠냐"고 말했다.

물가채는 원금증가분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대신 이자율(표면금리)이 연 1%대로 10년 만기 일반 국채 금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앞서 물가채는 2007년 3월 처음 발행됐지만 투자자들의 무관심으로 2008년 8월 발행이 중단된 바 있다. 정부는 발행방식을 바꾸고 물가가 하락해도 원금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금보장 조항을 넣는 등 제도 보완을 통해 2010년 6월부터 발행을 재개했다.

물가채의 본질이 최소한 물가상승률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원금증가분에 대한 과세는 본래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름대로 물가 상승분만큼 원금이 늘어나야 하는데 원금증가분에 세금이 붙으면 물가연동의 성격이 희석된다는 얘기다.

이중과세도 논란거리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원금에 붙는 이자에 세금을 내는데 늘어난 원금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라는 것은 이중과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고채 투자 저변을 확대해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하고 개인 투자자들에게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을 제공하겠다는 그동안의 방침과도 배치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정부는 중국 등 국제시장의 큰 손들이 국내 국채를 대거 사들이자 지난 4월부터 개인투자자의 물가채 입찰 참여를 허용하고 전체 발행금액의 20%를 우선 배정하는 등 '개인의 국채 투자 활성화'에 나섰다. 개인 투자자의 응찰 단위 금액도 100만원에서 10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한 증권사 물가채 담당자는 "원금증가분에 세금을 메기겠다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자 정책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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