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2시간 직원, 집 근처서 일하게 했더니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12.07.2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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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판타스틱 '신의 직장'/ 스마트워크 시행 기업

사무실에만 앉아있다고 해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으로 평가받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꿈의 직장'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스마트워크나 출퇴근탄력제 등을 도입하며 회사도 직원도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들을 살펴봤다.


삼성전자 스마트 워크센터(
사진_머니투데이)

◆"일상의 여유가 업무 효율성 높여줘"



#. 도봉구 창동에 살고 있는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정연훈 팀장. 그는 수원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매일 아침에만 2시간씩 허비했다. 고단한 아침이 매일 반복되니 직장에서 아무리 집중력을 발휘하려 해도 자꾸만 덮쳐오는 졸음에 비몽사몽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그의 하루일과를 바꿔 놓은 건 도봉구청에 위치한 스마트워크센터 근무를 신청하면서부터. 2시간의 출퇴근시간이 10분으로 줄어들며 아침시간도 훨씬 여유로워졌다. 그는 "센터나 사무실이나 근무하는데는 별 차이가 없다"며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도 대부분 센터에서 할 수 있다"고 만족도를 표했다.

최근 한국정보진흥원에서 발간한 <스마트워크 우수사례집>에 소개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만 근무해야 한다'는 오랜 통념을 깬 시도자체가 실질적으로 직장인들의 일상이나 업무 만족도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4월 KT (37,250원 ▼450 -1.19%)가 '스마트워크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운영 성과는 놀랍다. 스마트워크를 실시한 결과 1년 동안 26년의 시간이 절약됐다. 특히 기존 사무실 근무와 비교해 업무 집중도가 향상됐다는 의견이 72.2%나 됐다. 친환경 효과도 뛰어나다. 1인당 평균 출퇴근 거리를 33.4km로 계산했을 때 한달 동안 감소한 출퇴근 거리는 무려 지구 9.7바퀴였으며, 20톤의 이산화탄소 절감효과가 산출됐다. 회사 입장에서도 스마트워크 시행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얘기다.



◆"성공하려면 인프라보다 문화가 먼저"



스마트워크는 한국수자원공사 등 공기업과 특허청을 비롯한 공무원 조직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외에 KT, 포스코 (398,000원 ▼4,500 -1.12%), 삼성전자 (77,400원 ▼800 -1.02%), 유한킴벌리 등 대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스마트워크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내 화상회의시스템이나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등의 인프라가 먼저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업들이 스마트워크가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한결 같이 강조하는 것은 기업문화다. KT에서 스마트워크 관련 업무를 담당 중인 관계자는 "스마트워크는 한마디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묻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신저로 출퇴근 상황을 확인하거나 근무시간을 따져가며 업무에 임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 기업문화가 먼저 정착돼야 직원들이 창의적으로 자신의 업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그는 "초창기에는 스마트워크센터에 있으면서도 내가 일하고 있다는 걸 일부러 강조하기 위해 이유도 없이 화상회의를 걸거나 컨퍼런스콜을 요청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그런데 1년이 지나며 스마트워크가 자연스런 문화로 자리잡다 보니 직원에 대한 평가 역시 철저히 보고서 등 결과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한킴벌리도 스마트워크가 잘 시행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1994년부터 시차출퇴근제, 현장출퇴근제를 시행해 온 유한킴벌리는 지난해 9월 본사를 스마트오피스로 개선하고, 동시에 죽전과 군포 등에 스마트워크센터를 구축,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여느 직장처럼 팀 이름이 적힌 팻말과 각 맞춰 줄지어선 직원들의 책상이 없다. 대신 탁 트인 넓은 공간에 누구든 자유롭게 원하는 자리에 앉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변동좌석제'를 운영 중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근무하기를 원한다면 커피전문점처럼 꾸며진 사원 라운지에서, 또 집중해서 처리할 업무가 있다면 집중 업무공간을 이용하면 된다.

직급에 따라 자리 배치에 차이가 없으니 평소 다가가기 어려운 직장상사들과 마주보고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내 자리가 아닌 모두의 자리이기 때문에 확실히 불필요한 서류를 줄이고 깨끗하게 자리를 사용하는 것 같다"며 "누구 눈치를 보면서 일하는 것보다 내가 맡은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유연근무제, 성공하려면
 
최근에는 '9 to 6'의 근무시간 공식을 깬 유연근무제도 확산되고 있다. 출퇴근시간을 한시간 늦추는 등 조절을 통해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는 업무시간을 설정하고 근무하도록 하는 것이다.

2년째 유연근무제를 시행 중인 서울시를 비롯해 지자체의 유연근무제 도입이 일반화되고 있다. 일반 기업 중에서는 LG생활건강, SK그룹 등 대기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소형위성 전문업체 쎄트렉아이 등 탄탄한 기반을 갖춘 중소업체들도 점차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추세다.

물론 유연근무제 도입이 확산된다고 하더라도 활발하게 시행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실제로 공무원조직을 중심으로 유연근무제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제도는 마련돼 있으나 남들보다 일찍 퇴근하거나 늦게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상사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는 보수적인 직장문화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연근무제를 성공적으로 정착한 기업은 어디일까. 대표적으로 LG생활건강 (448,000원 ▼7,000 -1.54%)을 꼽을 수 있다. LG생활건강은 기존에 오전 8시∼오후 5시, 오전 9시∼오후 6시로 운영했던 유연근무제를 지난해부터는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30분 단위로 선택 범위를 늘리며 확대 시행 중이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었음에도 '9 to 6'를 선택하는 직원은 전체의 90%. 그야말로 유명무실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제도 개선 후에는 각기 다른 시간에 출근해 일찍 퇴근하는 직원이 전체의 33%에 달할 정도로 숫자가 부쩍 늘었다. 요즘에는 특히 자녀가 있는 워킹맘의 경우 출퇴근시간 조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한다.

LG생건 관계자는 "지난해 확대 시행 이후 회사에서 효율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등 스마트워크를 많이 강조했다"며 "이 같은 업무방식이 익숙해지면서 출퇴근 시간에도 눈치 안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덕분에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매출 3조원을 돌파하는 등 회사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높은 성과를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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