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 칼럼]고양원더스에서 배운다

머니투데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12.07.11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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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 칼럼]고양원더스에서 배운다


허민 원더홀딩스 의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온라인 게임업체 네오플을 설립해 '던전앤파이터'라는 게임으로 대박을 터트렸고 회사를 매각한 후 엉뚱하게도 버클리 음대에 진학했지만 어릴 적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너클볼의 대명사인 필 니크로에게서 너클볼을 직접 사사 받았다고 한다. 자유 영혼의 이 30대 청년은 작년 말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구단인 고양원더스를 설립해 구단주로 변신한다.

원더스는 한마디로 프로야구계에 패자부활전을 제공하는 구단이다. 구단 홈페이지에는 빨간 글씨로 '열정에게 기회를' 이라는 큼지막한 문구가 밑줄까지 그어져있다. 선수는 제도권의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거나 기존 구단에서 임의탈퇴로 방출된 선수들 중에서 선발한다. 한마디로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우리나라에서 야구로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해서는 프로구단에 입단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 올해 실시된 신인드래프트를 보면 777명의 선수가 신청해 94명만이 낙점을 받았다. 8대1이 넘는 경쟁률인데 자진에서 포기한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이 수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그나마 올해는 NC 다이노스의 창단으로 사정이 나아졌는데도 이 정도다. 좁은 관문을 뚫지 못한 선수들은 대부분 실업자로 전락하고 만다. 치열한 경쟁의 패자들에게 좌절의 아픔을 딛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열어 준다는 측면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기업을 비롯한 가진 자들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서브프라임 위기에 뒤이어 최근 유로위기가 닥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이에 따라 경영학에서 최근 대두된 화두가 '지속가능 경영'(sustainability)이다. 기업이 사회적, 환경적 책임 및 역할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학문적으로 엄정한 정의나 방법론이 미숙한 측면이 있지만 최근 하버드 대학의 연구진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990년 이후 미국의 대표적인 180개 기업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지속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낮은 기업에 비해 높은 장기성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단순히 기업의 목표를 단기 이윤에서 장기 이윤의 극대화로 대체하는 것 뿐 아니라 그런 장기성과에 영향을 주게 되는 여러 요소 중 지금까지 무시했던 기업이 자리 잡고 있는 사회적 생태계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횡단면적으로는 국가마다 사회, 정치, 문화적 차이가 있으므로 이들의 외생변수에 적합한 경영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부의 양극화 현상 및 중산층 붕괴 등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어떤가도 중요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도 중요하다. 지속가능성에 있어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불어 지금까지 기업이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를 고민해 왔다면 이제는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도 고민해야 장기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양원더스는 신선한 모형이다. 물론 이는 기업이 아닌 허민 구단주의 개인적 기부 행위이지만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쟁체제에서 뒤쳐진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어 다시 경쟁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단순히 재기의 기회를 준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실력을 제고시켜 앞선 주자들과 대등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 주었다. 이를 위해 김성근 감독과 같은 최고의 조련자를 영입했다. 김감독 입장에서도 박봉의 연봉에 이를 수락해 야구 인생의 말년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원더스의 이희성 투수가 LG에 입단하면서 허의장이 김감독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는 많은 감동을 준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덕분에 야구단 만든 보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자본주의,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본주의가 뭔지를 보여 준 두 사람에게 오히려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 마침 원더스의 성적 역시 5할대에 육박하면서 선전하고 있다. 고양원더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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