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평 시달리는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머니투데이 박창욱 선임기자 2012.06.2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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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멘토다]1.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란 없다'

편집자주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하 출처. 영화홈페이지.↑이하 출처. 영화홈페이지.


#.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신작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국내 언론에선 대체로 나쁜 평가가 많다.

비판의 내용은 "만들어진 지 30년도 더 된 전작 '에어리언'을 안 본 사람은 이야기를 알아 듣기 어렵다", "비주얼은 좋은 데 스토리가 엉성하다" 정도로 요약된다.

물론 헐뜯는 사람들 조차도 이 영화의 영상미 만큼에 대해선 좀체 시비를 걸지 못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구성이 허술하다는 평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에선 이 영화에 대해 악평이 많은 게 영화 자체가 아니라 다른 외적인 요인(?)때문이라는 풍문도 들린다.

영화 속 갈등이 명확한 설명이나 구체적 과정없이 순식간에 갑자기 해결되어 버리는 '후궁 : 제왕의 첩'에 대해서는 '치밀한 구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평가가 봇물을 이루는 걸 보면서, 프로메테우스의 구성을 지적하는 악평에 더욱 기가 막힌다.



한국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호평을 하고, 할리우드 영화라고 악평을 해대는 건 사실 한국 영화를 망치는 일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좋은 영화들이 설 땅이 생겨 결국 한국영화를 지켜낼 수 있다. 그러지 않고 노출이라든가 장르적 답습에 메몰되는 순간 '홍콩 영화' 꼴 나기 십상이다.
악평 시달리는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 말이 옆으로 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로메테우스는 '거장의 수작' 정도는 충분히 되는 영화다. 내용상 속편도 기대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팬이어서 편드는 건 절대 아니다. 할리우드에 대한 사대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1000원과 내 양심을 건다.

앞서 그가 만든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봤다. 초대박이 난 '글래디에이터'부터 '델마와 루이스', '1492 콜롬부스', '지.아이. 제인'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SF장르의 '에어리언'과 걸작으로 꼽히는 '블레이드 러너'까지.

이 가운데 특히 기존에 저급한 장르로 취급받던 SF에서 철학적 깊이까지 담아 낸 리들리 스콧의 영화적 공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은 작품 블레이드 러너에선 흔히 말하는 작가주의 감독들의 내공을 훌쩍 뛰어 넘는다.


따라서 리들리 스콧을 '작가주의 블록버스터' 감독쯤으로 부를 수 있겠는데, 프로메테우스엔 온갖 영화적 도구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주제를 표현하는 거장의 곰삭은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상상의 세계를 구경하는 재미를 주면서도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도 함께 담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오래된 문화재를 보는 것처럼 아는 만큼 보이고, 그 만큼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라 할 수 있다. 또 속편에 나오기에 앞서 우선 '감독판'(디렉터스 컷)부터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영화 구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관련, 아무래도 제작사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어서다.

할리우드 영화여서 상영시간을 줄이다 보니 영화의 내용이 갑자기 건너뛰는 것처럼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앞선 그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도 감독판의 경우에 초기 상영 당시 편집본과는 주제가 완전히 다른, 훨씬 내용상 구성이 좋은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악평 시달리는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 독일의 사상가 아도르노는 인간의 이성이 다른 것을 지배하고자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을 판단하려는 객관성을 잃어가면서 점차 도구화되고, 결국 막다른 길로 치달으며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프로메테우스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서구의 물질문명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극 중 캐릭터 가운데 안드로이드 로봇인 데이빗은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데이빗은 다른 사람이 동면하는 동안에도 혼자 우주선을 관리하고 외계어까지 해독할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로봇이기에 영혼이 없다. 자신을 만든 웨이랜드 회장의 명령을 받을 뿐이다.

데이빗은 정체불명의 검은 외계물질을 발견하고 그것이 뭔지 알아보기 위해 탐사책임자 중 한 사람인 찰리에게 먹인다. 인간 기원을 찾는 우주탐사 프로젝트의 스폰서인 웨이랜드 회장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찰리는 결국 죽고, 찰리와 밤을 함께 보낸 그의 연인 엘리자베스까지 위험에 빠진다.

자신의 생명 연장만을 위해 인간의 기원을 찾으려는 웨이랜드 회장에게 다른 사람의 생명 따윈 이미 안중에 없다. 데이빗 역시 찰리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전혀 없다.

앞서 말한 대로 영혼이 없는 웨이랜드 회장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외계물질이 회장의 수명 연장과 어떤 관계가 있을 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임무에만 충실할 뿐이다. 정당성과 사유 없이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은 이렇게나 위험하다.
악평 시달리는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 프로메테우스는 또 인간의 기원과 영혼에 대한 문제도 다루고 있는데, 이런 철학적 이야기를 더 하려니 머리가 좀 아프다. 화제를 돌려본다. 좀 유치하긴 한데, 현실적인 사회생활 관점에서 데이빗과 찰리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데이빗은 하고 많은 탐사 대원들 가운데 왜 하필 찰리에게 외계 물질을 먹였을까. 아마도 찰리가 자신을 로봇이라며 하찮게 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찰리는 "사람들이 왜 자신을 만들었을까"라는 데이빗의 질문에 "만들 능력이 되니까"라고 답한다.

참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다. 이에 데이빗은 "엔지니어(인류를 만든 외계인을 지칭)에게 똑같은 대답을 듣는다면 어떨까"라고 맞받아친다. 찰리는 또 탐사를 위해 모두가 수트를 입을 때, 데이빗에게 "왜 사람도 아닌 로봇이 그걸 입느냐"고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비록 영혼은 없지만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데이빗은 자신을 무시하는 찰리를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선택한 게 아닌가 싶다. 찰리는 오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잘못된 말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세상에 무시해도 괜찮은 존재란 없다. 지위가 좀 높다고 해서, 학력이 높다고 해서, 재산이 많다고 해서 남을 쉽게 무시해선 안 된다. 살다보면 내가 속으로 우습게 여기던 이에게 뜻밖의 도움이나 위로를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우리 주위 누구에게나 예의바르고 공손하게 대해야 한다. "작은 예절에 조심한다면, 인생은 더 살기 쉬워진다."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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