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정부 산업육성정책이 독과점 부추겨"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2012.06.0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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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별 독과점, 고착화 심각..경쟁정책 개선 필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과거 정부의 산업육성 정책에서 출발한 규제 독과점이 정유, 항공 등의 독과점구조 고착화로 연결됐다고 지적했다.

진양수 KDI 연구위원은 6일 '독과점구조의 심화와 경쟁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과거 정부 경제정책에서 생겨난 규제 독과점이 그대로 굳어진 탓에 1990년대 후반 가격자유화, 진입장벽 철폐 이후에도 정유, 항공, 자동차, LPG, 설탕, 커피 등에서 독과점구조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진 연구위원은 독과점구조 고착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쟁정책이, △실질적 진입장벽 제거 △경쟁제한적 기업결합규제 강화 △사적구제(private remedy) 활성화 △경쟁주창 강화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DI "정부 산업육성정책이 독과점 부추겨"


광업·제조업 부문 출하액을 기준으로 평균적 독과점 정도를 보면 상위 3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을 의미하는 CR3는 2002년 47.6%에서 2009년 55.4%로 상승했고 시장 독과점 수준을 나타내는 허핀달지수(HHI)는 같은 기간 1600에서 1820으로 뛰었다. 상위 3개 사업자의 순위 변동이 과거 5년 동안 전혀 없었던 산업의 수도 2008년 9개에서 2009년 16개로 급증했다.



특히 과거 5년 동안 연속적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한 산업의 수가 43개에 달했고 이들 산업의 CR3와 HHI는 각각 93.6%, 5600을 기록했다.

또 성과 측면에서 보면 독과점구조 고착산업이 광업·제조업 전체 평균에 비해 해외개방도 및 연구개발투자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영업이익률은 높게 나타났다.

진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독과점 산업에서 활동하는 사업자들이 대외 경쟁압력을 덜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혁신을 통한 독과점 사업자간 경쟁도 충분히 수행치 않은 상태에서 높은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진 연구위원은 이어 이 같은 독과점구조가 담합으로 연결돼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소비자 후생의 손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들어서 정유, 설탕, 커피, 항공 등 전통적 독과점 산업에서 담합행위가 지속적으로 적발됐으며 독과점구조 고착산업 중 소비재산업의 2003~2008년 가격 상승률은 24.8%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16.8%를 크게 웃돌고 있다.

진 연구위원은 이처럼 독과점구조 고착화된 것은 독과점 규제 억제력이나 실효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경쟁법 위반행위시 관련 매출액이 아닌 총매출액의 최고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엔 기업뿐 아니라 문제가 되는 개인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선 담합의 경우, 관련 매출액의 10%,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의 경우, 관련 매출액의 3% 이내에서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특히 실제 과징금 부과 땐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과징금이 책정된다.

아울러 경쟁당국이 경쟁법 위반 혐의에 대한 강제조사권을 갖지 않는다는 점도 경쟁법 규율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과거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정책이 경쟁 측면에서 독과점구조 고착화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도 인정된다.

과거 산업정책은 유치산업 육성, 지대배분, 사회통합 등을 목적으로 사업자 수를 제한하고 가격규제를 통해 적정이윤을 보장하는 규제 독과점 형태로 운영됐는데 이 런 방식으로 운영되던 산업 중 상당수는 1990년대 가격자유화, 진입제한 완화 등을 통해 규제영역에서 벗어난 뒤에도 이미 형성된 독과점구조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4개 사업자 구조가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는 정유산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정유 4사 구조는 1980년대 정부의 가격통제 속에 형성된 후 1990년대 후반 가격규제 철폐, 수입자유화 이후에도 견고하게 계속되고 있다.

LPG, 항공, 자동차, 맥주, 설탕, 담배 등 전통적인 독과점 산업 대부분이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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