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세종문화회관의 '밀당'의 탄생?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2012.05.11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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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손잡고 고민하라

[기자수첩]세종문화회관의 '밀당'의 탄생?


얼마 전 서울시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행사 '광화문 별밤 축제' 취재차 세종문화회관에 전화를 하자, 담당직원의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개막일인 5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의 프로그램이 갑자기 취소됐다는 것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시민을 위한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며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행사를 소개한 상황이었고, 축제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축제가 폐막하는 10월까지 공연될 프로그램이 아직 많다고는 하지만 행사초기부터 사전공지도 없이 공연을 취소하는 경우는 흔치않다. 출연진과의 계약문제도 있지만 관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자초지종이 궁금해 이번 축제의 외부 공연제작 관계자를 만났더니 그는 울분을 토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당극을 좋아하는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신임 사장이 공연프로그램을 자신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대형 야외공연을 취소시켰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박 사장이 "내 고집을 꺽은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자주하며 밀어붙이기식 경영을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사장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대기업의 협찬을 받아 대형무대를 꾸미는 것은 축제의 취지에 맞지 않을 뿐더러, 중앙계단 앞에 벽이 높은 무대를 설치하면 광화문 광장 쪽을 가로막게 돼 공간의 소통도 단절된다"며 "이것이 진정 시민을 위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박 사장은 또 공연기획팀에는 무대를 바꾸고 더 고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무대세트나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바꾸라는 명확한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런 지시가 있었다면 행사준비를 계속 했겠냐고.

박 사장이 광화문광장과 건물 간 소통은 중요시 하면서 직원들과의 소통은 소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시민을 위한 축제가 기업홍보의 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장의 취지는 일리가 있지만 내부 직원들을 설득하는 것도 사장의 중요한 역할이다.


직원들 역시 시민들의 세금으로 일하는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필요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시민들을 위한 더 나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과감히 바꿀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이번 입장충돌이 신임사장과 직원들이 시민을 위하는 방법 차이에서 온 '기 싸움'에 그치길 바란다. 연인 간에 더 좋은 관계를 위해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 싸움'은 짧을수록 좋다. 밀당도 길어지면 이별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종문화회관의 주인은 박 사장도, 직원도, 서울시도 아닌 시민임을 명심하고 무엇이 과연 시민을 위한 것인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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