렙솔, 아르헨 YPF 국유화로 中에 매각계획 무산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권다희 기자 2012.04.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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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아르헨티나 최대 석유기업 YPF를 인수할 기회를 맞았지만 아르헨티나 정부의 갑작스러운 YPE 국유화로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정부가 YPE의 국유화를 발표하기 직전에 YPF의 최대 주주인 스페인 에너지 기업 렙솔이 YPF의 지분을 중국에 매각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FT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렙솔이 YPF의 지분 57%를 중국 에너지기업 시노펙에 매각하려 했으며 이 협상이 아르헨티나 정부가 16일 국유화를 공표하면서 깨졌다고 보도했다.

렙솔은 지분 매각액으로 100억 달러 이상을 예상했으며 아르헨티나 정부와는 이를 논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YPF의 주요 의사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황금주를 보유하고 있어 모든 거래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매각협상을 어떤 형식으로든 아르헨티나 정부에 알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FT에 따르면 렙솔의 매각 협상은 지난 13일 밤까지 진행됐다. 렙솔은 YPF에 관심을 보였던 중국 기업 측에 매각 의사를 타진하고 이를 아르헨티나 당국에 보고할 계획이었다. 아르헨티나 당국이 렙솔 대신 새 파트너를 맞아들이는 모양새다. 그러나 렙솔 측의 계획과는 다르게 아르헨티나 당국은 렙솔이 계획을 제출하기 전 국유화를 발표했다. 시노펙은 렙솔 브라질 법인의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다.

한편 16일 아르헨티나 정부가 스페인 에너지 기업 렙솔이 최대주주인 YPF 국유화 계획을 발표 한 후 양국 간 긴장감이 확대되고 있다.


렙솔은 아르헨티나 정부에 YPF 지분과 관련해 최소 100억 달러 이상의 보상을 요구한다고 밝혔으나 이에 대해 악셀 키실로프 아르헨티나 경제부 차관은 "우리는 YPF의 진짜 가치를 결론내릴 것이며 렙솔이 말하는 대로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멕시코 방문 중 이 소식을 접하고 아르헨티나의 움직임에 대해 "매우 불쾌하다"며 "어떤 정당성이나 경제적 이유도 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도 국유화가 "유감스럽다"며 "자신들의 투자를 빼앗는 국가에 누구도 투자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아르헨티나 정부가 입을 대내외적 타격이 예상된다. EU는 아르헨 최대의 수출시장이다. 지난해 아르헨티나의 대 EU 수출액은 143억달러, 2010년 대비 28% 늘었을 정도로 교역이 활발했다.

EU 중에서도 16세기부터 아르헨티나를 개척하고 식민 지배했던 스페인이 단일국가로는 최대 시장이다. 스페인이 이 사태로 아르헨티나와 일체의 관계를 끊기로 한다면 아르헨티나의 대유럽 수출도 상당 부분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치리스크 전문기관 유라시아그룹의 대니얼 케르너 애널리스트는 "아르헨티나가 게임의 룰을 바꿨을 뿐 아니라 핵심기업의 자산마저 인수했기 때문에 앞으로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가 아주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아르헨티나의 결정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히며 아르헨티나 정부가 국제적 의무와 공약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번 결정으로 국내 반발여론에도 직면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부에노스아이레스시장은 "이번 결정은 우리에게 수십억 페소의 부채를 안겨 줄 것이며 전 세계로부터 아르헨티나를 멀어지게 만들 것"이라며 "우리 모두는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야당도 정부의 결정이 "미친 짓"이라며 국제고립만 자초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야당 의원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우리와 스페인의 교역과 상호존중, 연대의 역사를 무너뜨렸다"고 비난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YPF 지분 51%를 정부가 인수하는 법안을 의회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르헨 정부는 이를 통해 YPF 배당을 제한하는 한편 지방정부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아르헨 정부는 곧장 세바스찬 에스케나지 YPF 최고경영자(CEO)를 훌리오 데 비도 기획장관으로 교체하는 등 경영권 인수를 현실화했다.

아르헨 정부가 YPF에 두 달 간 석유 증산을 요구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마침내 국유화 카드를 꺼낸 것이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대통령궁 연설에서 아르헨티나가 성장불능국가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YPF를 인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 국유화를 정당화했다.

실제로 이 법안은 "렙솔이 YPF를 인수한 뒤 원유 매장량과 생산량 감소에 책임이 있다"며 "약탈자와 같은 렙솔의 태도가 아르헨티나로 하여금 국유화에 나서도록 했다"고 명시했다.

1990년대 민영화 추세 속에 아르헨 정부는 YPF 지분 0.2%와 황금주만 남기고 대부분을 민간에 매각했다. 렙솔은 1999년 YPF 지분을 80% 이상 인수했지만 2008년과 2011년, 이 가운데 일부를 아르헨티나 에스케나지 가문에 나눠 매각했다.

이에 따라 현재 YPF는 렙솔이 57.4%, 에스케나지 가문이 25%, 나머지 17% 가량을 기관투자자들이 갖고 있다. 페르난데스 정부는 이 가운데 에스케나지 가문의 지분 전체와 렙솔의 보유분 일부를 합쳐 51%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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