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 도전하는 한국 청년들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미국)=최우영 기자 2011.12.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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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업가정신 현장을 가다] <4>

편집자주 실리콘밸리는 전세계 창업가들에게 기회의 땅.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면 전세계에서 성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네트워크도 없는 한국인 창업가들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의 땅이다. 머니투데이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며 실리콘밸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국인 청년기업가들을 만났다. 현지 미국인들과 함께 문화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창업가, 처음부터 문화적 제약이 적은 분야를 공략하는 창업가, 사업계획서 한 장 들고 투자자들을 찾아 다니며 네트워크를 만든 창업가 등 이들의 노하우를 소개한다.

한국에서 온 게임에 '미국 문화' 입힌다
●'매닉프로그' 박지은 대표

박지은 매닉프로그 대표(오른쪽)는 한국게임을 미국인의 정서에 맞게 재가공하기 위해 영문학 전공자 트래비스 트레켈(왼쪽), 기자 출신 라이언 올슨(가운데) 등 현지인들과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 /사진=최우영 기자 young@박지은 매닉프로그 대표(오른쪽)는 한국게임을 미국인의 정서에 맞게 재가공하기 위해 영문학 전공자 트래비스 트레켈(왼쪽), 기자 출신 라이언 올슨(가운데) 등 현지인들과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 /사진=최우영 기자 young@


“한국에서 들여온 게임에 여자 아이들이 팔짱을 끼고 있는 장면이 나오면 과감히 삭제합니다. 미국인들은 팔짱 낀 여자 캐릭터가 나오면 으레 레즈비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한국의 소셜게임을 미국인들 정서에 맞게 재가공해 페이스북용 게임으로 제공하는 매닉프로그(http://manicfrog.com)의 박지은 대표(39). 올 3월 싸이월드의 앱 게임 ‘프렌즈파이터즈’를 미국식으로 변형, 페이스북을 통해 내놓은 ‘마샬아츠마스터즈’의 월 이용자 수만 9만 명에 달한다.



아직 성공이라고 표현하기는 이르지만, ‘문화를 번역한다’는 그의 전략이 실리콘밸리에서도 서서히 먹혀 들어가고 있다. “한국에 우수한 게임이 정말 많잖아요. 그런데 그대로 들고 왔다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문화가 다르잖습니까?” 예를 들어 한국의 격투게임 마니아들은 집단 간 힘겨루기인 ‘도장 깨기’를 좋아하지만 미국의 마니아들은 무술 자체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싸이월드의 프렌즈파이터즈는 집단간 격투가 주된 내용이지만, 매닉프로그의 마샬아츠마스터즈는 개인간 격투 중심으로 진행된다.

박 대표는 한국에서 라이코스, 블리자드, 넥슨 등에서 일하다 2007년 미국으로 건너와 게임업체 아웃스파크에서 한국 개발자들에게 게임을 발주해 미국에 가져오는 일을 했다. “당시 한국에 있는 게임 개발자와 미국에 있는 현지 직원들간 마찰이 많았죠. 서로 정서가 달랐기 때문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박 대표는 2009년 현지 인력 7명과 함께 한국 게임을 제대로 한번 미국화해서 내놓자는 생각에 회사를 차리게 됐다.



영어에 능통한 박 대표지만, 게임스토리 번역에서부터, 게임내용의 수정, 마케팅, 고객 게시판 답변 글 작성 등은 현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거나, 기자생활을 한 미국인 동료에게 맡긴다. 게임을 미국화하는 것은 단순히 언어만 번역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게임을 발굴하고, 한국 개발자들과 협의하는 총괄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미국인 동료들은 박 대표가 파악하기 힘든 저작권 문제까지 용케 알아낸다. 이 회사 커뮤니티 매니저인 트래비스 트레켈(29)씨는 “싸이월드의 게임앱 ‘카페스토리아’를 ‘베이크샵’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를 준비 중인데, 게임에 나오는 카푸치노를 ‘Cappuccino’로 번역하면 스타벅스 메뉴와 겹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이런 경우 철자를 바꿔 게임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사정에 밝은 현지 인력이 아니면 알기 힘든 대목이다.

박 대표는 “한국 게임개발자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한국게임의 미국진출 전망은 밝다”며 “다만 미국인 정서와 페이스북 환경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지 미국인들과 함께 회사를 꾸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론칭 5년만에 연매출 500만 달러 성장
●'딜스플러스' 김광록 부사장

미국 전역에 쇼핑정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동부시간에 맞춰 아침 7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 김광록 딜스플러스 부사장(앞줄 왼쪽 3번째)과 직원들. /사진=딜스플러스 제공미국 전역에 쇼핑정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동부시간에 맞춰 아침 7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 김광록 딜스플러스 부사장(앞줄 왼쪽 3번째)과 직원들. /사진=딜스플러스 제공
실리콘밸리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언어적, 정서적 제약이 적은 분야를 공략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으로 유학 온 지 10년이 채 안 되는 한국인 청년들이 만든, 소셜쇼핑정보 사이트 딜스플러스(http://dealspl.us)는 론칭 5년 만에 한달 방문자 600만명, 연매출 500만달러에 달하는 성공적인 사이트로 성장했다.

공동창업자인 김광록 부사장(36)은 “가격이나 상품의 스펙 같이 똑똑 떨어지는 객관적인 정보들을 보여주는 사이트이기 때문에 한국인 창업자에게 문제가 될 수 있는 정서적 간극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2002년 샌프란시스코 버클리대학원에 유학을 온 김 부사장은 이듬해 버클리대 동기와 함께 인터넷언론 ‘오크뉴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토종한국인으로 구성된 팀은 미국인들의 정서와 문화를 파고드는 데 실패했고, 이 실패는 언어적 제약이 비교적 덜 한 업종을 선택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김 부사장은 이후 사기를 당해 또다시 실패하기도 했다. 한국 문구업체 미주 판권을 가진 한국인이 제안한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그 한국인이 도박에 빠지면서 투자금을 들고 사라진 것. 그는 반년 동안 사업구상만 하다 2006년 오크뉴스를 함께 창업했던 학교 동기와 딜스플러스를 창업했다. 미국에서는 쿠폰북, 추수감사절 세일 등 쇼핑 할인문화가 발달했지만, 각 쇼핑업체의 할인정보를 체계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사이트가 확실히 구축되지 않은 데 주목한 것. 동기가 사장을 맡고, 자신은 부사장을 맡았다. 다시 실패할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싶어 투자도 받지 않은 단출한 출발이었다.

딜스플러스는 미국 전역의 쿠폰북을 수거하고, 쇼핑업체의 이벤트세일 등의 정보를 모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예를 들면 전자제품 판매점 베스트바이에서 32인치 LCD TV를 80달러에 판다는 이벤트를 열 경우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 정보를 알리고, 베스트바이로부터 일정의 수수료를 받는 식”이라고 말했다. 딜스플러스는 쇼핑업체와 직접 연락할 필요 없이 홍보계약을 주선해주는 업체를 통해 공급자를 확보했다. 회사는 매년 2배씩 성장하면서 올해 예상매출만 500만 달러.

딜스플러스는 이후 블랙프라이데이(11월 마지막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 연중 최대의 쇼핑이 이뤄지는 날)용 사이트, 소셜마케팅사이트 등을 추가로 만들고 수십 명의 현지 직원들도 채용했다. 그는 “딜스플러스의 성공스토리가 한국에 있는 창업가들에게 전해져 더 많은 한국인들이 실리콘밸리로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월급 안 주지만··· 페이스북 2배 작업속도
●'모모로컬' 신재환 대표

지난 상반기에 베타모델을 선보인 신재환 모모로컬 대표는 "매주 100시간씩 일을 하고 숙식도 사무실에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최우영 기자 young@지난 상반기에 베타모델을 선보인 신재환 모모로컬 대표는 "매주 100시간씩 일을 하고 숙식도 사무실에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최우영 기자 young@
“카카오톡에 벼룩시장을 붙여 미국시장에 선보인 셈이죠.”

2009년 미국으로 건너와 창업한 신재환 모모로컬(http://momolocal.com) 대표(33)의 비즈니스 모델은 지역 구성원들이 재능과 물건을 서로 교환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 “예를 들면 김치 담그는 법을 모르면 모모로컬에 도움 요청 글을 올릴 수 있고, 도움을 준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남는 거죠. 그래서 김치에 관해 검색하면 도움을 준 사람, 즉 해당분야에 노하우가 있는 사람이 바로 검색될 수 있는 것이죠. 일종의 네이버의 ‘지식인’ 같은 것을 커뮤니티 차원에서 구축하는 것이죠.”

신 대표는 미국으로 건너와 교회를 다니면서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다. “교회 구석에 ‘방 2개 있습니다’ 광고를 붙이니까 금방 거래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커뮤니티 문화가 강한 미국에 물건과 재능을 교환하는 사이트를 구축하면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 대표는 이를 위해 엔젤투자자로부터 100만 달러를 투자 받아 서비스를 만들었다.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방대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투자금 대부분은 검색엔진 관련 특허출허 등에 쓰이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 위주로 지급했을 뿐 월급을 거의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대부분 ‘지역사회를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에 공감하는 미국, 중국, 우크라이나 출신 현지 개발자. 마이크로소프트 검색엔진 ‘빙(Bing)’ 수석 개발자도 합류했다.

“월급이 거의 없어도 초인적인 속도로 일하고 있어요. 한 페이스북 창업 멤버가 현재 900만 줄에 달하는 페이스북 코드(웹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입력한 컴퓨터 언어)를 만들려면 200명의 개발자들이 2년 동안 작업해야 한다던데, 10여명 모모로컬 직원들이 1년 동안 만든 코드가 50만 줄입니다.” 단순계산만 해도 페이스북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인 셈이다. 덕분에 모모로컬은 예상보다 빠른 지난 상반기에 베타 서비스를 출시했다.

신 대표는 미국과 파리를 오가며 건축을 공부하다, 한국에서 병역특례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건축, 도시설계와 웹사이트 구축은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들어와 사용하고, 들어온 사람들을 상호작용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모모로컬을 본궤도에 올려 후배 한국인 창업가들이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5번 실패·15만 달러 손실··· 그래도 도전
●'클리코' 리차드 리 대표

이번이 6번째 창업인 리차드 리 클리코 대표는 "5전6기의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한국인 창업가들을 이끌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최우영 기자 young@이번이 6번째 창업인 리차드 리 클리코 대표는 "5전6기의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한국인 창업가들을 이끌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최우영 기자 young@
리차드 리(25·한국명 이동윤) 클리코(http://kliqo.com) 대표는 미국에서 스타트업 창업만 6번째. 아직 이렇다 할만한 성공작이 없지만, 실패를 통해 배운 점을 엔젤 투자자로부터 인정받아 올 초 다시 수만 달러 투자 받았다. 그래서 게임 형태로 온라인 광고를 제작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아직 수익은 미미하지만 최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한 전자업체가 출시할 노트북 체험광고에 닷새 만에 750만 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네티즌들은 웹사이트 광고에 대해서는 습관적으로 닫아버린다”며 “광고에 게임 콘텐츠를 접목하면 기업과 사용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02년 중학교 3학년때 미국에 건너온 그는 한국의 싸이월드 열풍을 보면서 1년 뒤 고교생 신분으로 친구와 함께 미국판 싸이월드를 창업했다. 한때 열심히 활동하는 사용자만 8만명에 달했지만, 한 달에 3000달러씩 들어가는 서버유지 비용을 뒷받침할 수익모델을 세우지 못해 결국 각각 부모님에게 빌린 자금 5만 달러씩을 날렸다. 이후 중고 서적 거래사이트, 중고 전자제품 가격비교 사이트 등 4번의 창업을 더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다섯 번의 실패를 겪은 그는 인터넷 경매사이트 이베이를 벤치마킹한 비즈니스를 계획하기도 했다. 이베이의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수수료를 낮추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투자자들에게 사업계획서를 보냈다. 하지만 타임지 기자 출신으로 구글에 초기 투자했던 마이클 모리츠의 답장을 받으며 이 사업을 접었다. “모리츠로부터 ‘돈은 벌 수 있겠지만 이베이의 핵심 내용을 베껴오겠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답장이 왔죠. 그때 벤처는 돈 버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배웠죠. 광고주와 광고를 보는 사람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이후 그는 매일같이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가 사업계획서를 보여주고 설명했다. 각종 이벤트를 다니며 개발자도 구했다. 이 대표는 “처음 창업한 2003년 이후 올해까지 까먹은 자금만 15만 달러가 된다”며 “하지만 이번만큼은 성공해 실리콘밸리의 성공적인 한국인 창업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미국)=최우영 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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