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지 아파트, 이제는 기피대상?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11.11.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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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해 전까지 통용되던 부동산 투자 불문율이 깨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이끌던 대단지 아파트 이야기다.

지금까지 대단지 아파트는 역세권과 더불어 아파트 구입 조건 중 첫번째로 꼽혔다. 지역 커뮤니티나 상권 형성이 쉽고 조경이나 기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생활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부녀회의 입김이 강해 자치단체나 시공업체를 대상으로 요구조건을 관철시키는 힘도 지녔다. 집값 상승기에는 중소형 단지에 비해 단체 행동을 통해 시세를 끌어올리기도 쉬웠다. 의사결정이 강력하기 때문에 재건축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장점만 부각됐던 대단지 아파트에 경고등이 켜진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최근 대단지의 가격 하락폭이 오히려 소형 단지에 비해 커지면서 '대단지 위기론'까지 불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써브가 서울 아파트(주상복합 포함) 118만5187가구를 대상으로 매매가 변동률을 분석한 결과 1000가구 이상 대단지는 올 초에 비해 2.13% 하락했다.



500가구 이상 1000가구 미만의 중형단지의 변동률이 0.38% 하락하는데 그치고 500가구 미만 소규모 단지는 0.21% 오른 것에 비하면 대형단지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크다. 박정욱 부동산써브 연구원은 대단지의 가격 하락세에 대해 "호황기에는 시세 상승을 주도해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지만 불황기에는 매물이 쌓이면서 오히려 시세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노후 대단지, 기피현상 뚜렷

해마다 전국에서 20~40개의 대단지 아파트가 분양된다. 2008년 31개 단지에서 2009년 37개 단지로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24단지로 줄었다. 올해에는 11월까지 무려 42개 단지가 1000가구 이상의 대단지다.


분양 결과는 규정할 수 없다. 가격이나 단지구성, 분양업체의 홍보전략에 따라 성적은 제각각이다. 최근에는 중소형 위주로 구성된 부산 경남권의 성적이 좋은 편이다. 꼭 대단지라고 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분양시장에서는 대단지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반면 기존의 대단지 아파트는 선호도가 갈린다. 입주 시점이 가까운 신규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인기가 높지만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대단지 아파트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신규 대단지는 깨끗한 시설물 외에도 특화된 조경과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이 강점이다. 반면 재건축 연한이 다 됐거나 가까운 단지는 주차난, 시설노후, 단지 내 휴식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기피하는 경향이 역력하다.

정태희 부동산써브 연구원은 "신규 대규모 단지 아파트는 수요가 꾸준해 가격 하락폭이 적은 반면, 노후한 대규모단지의 경우 수요가 적어 가격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설명했다.

◆시세 하락기 강남 대단지가 주도

부동산써브의 조사 결과 대단지 중 가격이 가장 많이 떨어진 지역이 강남구(-8.13%)인 점도 재건축 단지의 하락세와 무관치 않다. 박 연구원은 "재건축아파트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대규모 재건축단지가 밀집된 강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하락세를 이끌었다"고 전했다. 이어 강동구 -5.03%, 도봉구 -3.53%, 강서구 -2.73% 순으로 하락폭이 컸다.

강남구 대치동 한보미도맨션1차(1204가구)는 재건축 단지의 하락세와 맞물리면서 -5.56%의 변동률을 보였으며 강동구는 암사동 프라이어팰리스(1622가구)가 -3.88%를 기록했다.

강동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시세 하락기에 대단지의 가격 하락폭이 큰 이유에 대해 "단지 규모가 클수록 기존 매물보다 가격이 하향 조정된 추가 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세가 조정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예컨대 같은 면적의 아파트를 A가 10억원에 내놨는데 소진되지 않는다면 B는 이보다 낮은 9억5000만원에 내놔야 팔린다. 동일한 면적을 가지고 있는 주택 소유자가 많기 때문에 가격 하락기에 경쟁자가 많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면 500가구 미만 소단지는 0.21% 올랐다. 강남구 대치동 선경3차(54가구)는 0.63%, 강동구 암사동 한솔(203가구)은 2.76% 상승했다. 인근 중개업소는 "소단지의 경우 경기가 호황일 때는 시세상승 여력이 대단지에 비해 작지만, 불황기에는 경기침체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편이다"라고 전했다.

경기 호황기에는 대단지가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면서 시세 상승을 주도했지만 최근 경기침체와 높은 가격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하락폭이 크다는 것. 앞으로 시장여건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대단지 아파트의 하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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