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원·340원이면 ‘진짜’ 베이징이 보인다

머니투데이 홍찬선 베이징특파원 2011.10.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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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World News/홍찬선 특파원의 China Report<6>

편집자주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비행기로 2시간도 채 안 걸린다. 1년에 왕래하는 사람이 600만명을 넘고, 교역량도 2000억달러를 초과했다. 5000년 역사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1948년부터 1992년까지 국교가 단절돼 있던 44년 동안, 매우 멀어졌다. 아직도 생각과 체제에서는 좁혀야 할 게 많다. 차이나 리프트는 홍찬선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이 2주에 한번씩, 먼 중국을 가깝게, 가까운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3년 동안 베이징에 살면서 버스나 지하철 한번 안타고 귀국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베이징특파원으로 부임한지 4개월이 지났을 때 식사자리를 함께 한 주재원이 이런 말을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살다 베이징에 오면 택시비가 싸다고 생각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택시뿐만 아니라 헤이처(黑車)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타는데 불편한 지하철이나 버스를 왜 타겠느냐?”는 반문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지 않고서 어떻게 베이징을 알고, 중국을 이해하겠느냐?”는 지적도 덧붙였다. 참고로 헤이처란 영업허가를 받지 않고 택시영업을 하는 불법 자가용 자동차로 택시 요금보다 1.5배 정도 비싸다.





이 말을 들은 필자는 속으로 뜨끔했다. 베이징에 온지 4개월이 넘도록 지하철과 버스를 한번도 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진면목을 실시간(Real Time)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알려 주겠다’는 다짐을 하고 베이징에 왔는데 중국의 서민이 매일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타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가지 매너리즘이 여전히 택시를 고집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나는 ‘중국어가 어느 정도 되면 타겠다’는 자기합리화였다. ‘베이징 지리도 모르는데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어떻게 목적지에 갈 수 있겠느냐?’는 근거 없는 불안이 그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베이징 택시비가 ‘싸다’(물론 서울과 비교해서)는 사실이다. 베이징의 택시비는 기본요금이 10위안(약1700원)으로 약간 비싼 편이지만 웬만한 거리는 30위안(5100원) 정도면 갈 수 있다. 상하이행 고속전철을 타기 위해 필자가 살고 있는 왕징(望京, 베이징 중심부에서 동북쪽으로 30km쯤 떨어져 있다)에서 70km 정도 떨어진 베이징남역까지 택시타고 가도 70위안(1만1900원)밖에 안 나온다.

2가지 타성에 젖어 있던 필자는 “3년 동안 베이징에 살면서 버스나 지하철 한번 안타고 귀국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말을 들은 다음날부터 지하철과 버스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정말 느끼는 게 많다. ‘왜 진작부터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타지 않았을까?’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적극 권유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베이징 지하철이나 시내버스가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은 근거가 전혀 없는 선입견이었음을 알게 됐다. 베이징에는 지하철이 15호선까지 개통돼 있다. 아직 일부 구간이 공사 중이어서 부분적으로만 개통된 노선이 있기는 하지만 갈아타는데 약간 걷는 불편만 감수한다면 언어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은 거의 없다. 시내버스도 중국말과 영어로 안내방송을 하고 있어 이용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둘째 교통요금이 상상 이상으로 싸다. 지하철 요금은 2위안(340원)이고 시내버스는 1위안(170원)이다. 특히 지하철역에서 파는 교통카드를 사면 4마오(68원), 좀 멀리 가면 6마오(102원)다. 약간 막연하니 예를 들어보자. 왕징에서 주중한국대사관이 있는 샤오윈루(宵云露)까지 택시 타면 20위안 정도 나오는데 버스는 4마오다. 왕징에서 칭화대학(淸華大學)까지 버스는 6마오지만, 택시는 35~40위안(베이징 택시도 ‘시간 거리 병산제’여서 길이 막히면 더 나온다)이다. 택시가 버스보다 50배나 비싸다는 얘기다.

셋째, 택시 타고 다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베이징의 지명(地名)을 많이 외우게 된다. 택시를 타면 큰 길 중심으로 지명을 알지만,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대로명(大路名) 외에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지명이 눈과 귀에 들어온다. 또 택시를 타고 다니면 점(点)으로 연결되던 베이징 시내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선(線)으로 이어진다. 칭화대에서 베이징대으로 갈 때 택시를 타면 꽤 먼 것처럼 느껴지지만, 버스를 타면 칭화대 서문과 베이징대 동문이 길 하나 사이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베이징에 오래 살다보면 택시를 타고 다녀도 베이징 시내가 선으로 연결될 것이다).

넷째,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베이징 교통체증을 가볍게 떨쳐버릴 수 있다. 베이징에 와서 2개월쯤 지났을 때, 베이징 중심가(궈마오(國貿)빌딩이 있는 곳)에서 인터뷰 약속이 있었는데 1시간 전에 택시를 탔지만 30분이나 늦어 당황했던 적이 있다. 택시 안에서 전화를 걸어 몇번씩이나 사과한 뒤 겨우 도착해서 질문 몇개를 했지만 인터뷰 약속시간이 다 돼서 일어서야 했던 경험이 아직도 새롭다. 그때 지하철 타는 방법을 몰라 안절부절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이 정말 명언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다섯째,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여러 가지 보너스도 얻을 수 있다. 먼저 건강에 좋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면 아무래도 많이 걷게 된다. 일부러 운동할 여유가 없는 베이징 주재원들에게 대중교통은 적절한 운동을 하게 하는 아주 좋은 헬스클럽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타고 있으면 시시각각으로 들려오는 중국어는 돈 주고 배우기 어려운 생활중국어 그 자체다. 정거장 안내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연인들끼리 소곤거리는 밀어(蜜語)와 열 받은 부부들의 전투 중국어까지 다양한 중국말을 생생하게 공부할 수 있다. 새벽 5시부터 서둘러 일터로 나가서 해가 떨어져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국 서민들의 여러 가지 얼굴 표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놓치기 아까운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9월부터 시작된 버스와 지하철 타기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선물을 받는 것으로 이어졌다. 버스를 타고 아낀 택시비로 <이징짠뤼에>(역경전략, 易經戰略)이라는 책을 샀는데, 그 책을 본 중국인 친구가 <구원관즈>(고문관지, 古文觀止)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선물로 주었다. <古文觀止>는 <명심보감>처럼 중국의 역사와 철학 및 문학 고전 중에서 유명한 부분을 발췌해서 현대 중국어로 번역해 놓은 책. 톈진(天津) 고적서점(古籍書店)에서 1981년에 출판했는데, 지금은 구하려고 해도 찾기 어려운 진본(珍本)이다. 대중교통 이용이 이런 진본을 얻는 인연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니 세상 이치가 참으로 오묘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대중교통이 좋다고 만은 할 수 없다. 택시를 타고 싶어도 돈이 없어 어쩔 수없이 만원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하는 서민들에게 대중교통이 좋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치일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혼잡한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이리 밀리고 저리 쏠리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베이징에 3년이나 살면서 버스나 지하철을 한번도 타보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베이징을 보다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중교통과 함께 지내보는 게 삶을 더 풍부하게 할 것이다. 돌 하나로 새를 5~6마리 잡을 수 있는 일거오득(一擧五得), 일거육득(一擧六得)의 즐거움을 위해 오늘도 즐겁게 버스와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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