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체력' 한국증시, 아킬레스건은 여기

머니투데이 임상연 기자 2011.08.2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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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한국 증시 개조 프로젝트 'WHY&HOW' ]서론-"위기는 기회"

-10여년간 증시 상황 급변...이상 급등락, 이제는 '일상'
-개인 외국인 기관, 투기-단타 조장 요인 수두룩
-수급 구조 불안, 펀더멘털 변화 확대 재생산
-기관중심 100조 방파제 '강심장' 만들어야

#축산업자 전모씨는 지난 18일 자신의 1톤 트럭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빚을 내 주식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해를 보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하루전날도 한 한 개인투자자가 "주식을 하는게 아니었는데...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0일에는 증권사 직원이 고객 손실을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 국내 증시에서 일평균 4000억원의 현금을 찾아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발 경제위기로 유동성 확보에 나선 외국인들이 아시아 이머징마켓, 특히 한국증시를 현금지급기(ATM)로 애용하고 있다는 개탄이 절로 나온다.

#외국인 매도세에 놀란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번갈아가며 주식을 내던지고 있다. 로스컷(손절매) 규정에 따라, 혹은 공포에 질려 주식을 내던지는 기관들에게 '장기 투자전략'은 허망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빚까지 내 투자에 나선 '개미'들은 자산가치와 담보가치 하락을 견뎌내지 못하고 두 손을 든다.



파도치면 쓰나미오는 한국 증시

2011년 8월, 사상 유례없는 폭락장이 반복되고 있는 한국 증시의 모습이다.
물론 휘청거리는 게 한국 증시만은 아니다. 미국 더블딥(이중침체) 우려와 유럽의 재정위기 확산으로 전 세계 증시가 하락세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유독 충격에 취약하다. 지난 주말 19일 중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증시는 2% 미만의 하락세를 보였지만 한국 증시는 6% 넘게 폭락했다. 낙폭이 진정되긴 했지만 20일에도 한국 증시의 낙폭(1.96%)는 일본 니케이 지수 하락폭의 두배(1.04%)에 달하는 등 아시아 증시 하락의 선두에 섰다.
16일에는 아시아 주요증시가 약보합세에 머물렀지만 한국 증시는 4%이상 폭등했다. 극도의 '널뛰기'는 구조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증시의 남다른(?) 변동성이 아시아 증시와의 ‘키 맞추기’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아시아증시의 하락추세에서 한국만이 나홀로 오른 것이 진폭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 증시의 지나친 변동성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특히 점심때나 장 마감 1시간을 앞두고 몰아닥치는 ‘패닉 셀링’으로 코스피가 수십 포인트씩 폭락하고, 꼬리(선물)가 몸통(현물)을 뒤흔드는 이른바 ‘웩더독(Wag the Dog)’ 현상이 일상화된 시장은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장기자금 수혈, 한국증시 강심장 만들자"

90년대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급성장 과정에서 양적확대에만 매달린 결과 정상적인 시장 기능을 저해하는 ‘아킬레스건’이 어느덧 고질처럼 자리를 잡았다. 글로벌 더블 딥 우려와 이로 인한 '시장 대혼란'을 통해 이같은 취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한국 증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부와 업계가 협조해 한국 증시의 취약점을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건호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증시가 많이 고도화됐지만 이번 사태로 또 다른 취약점이 발견됐다”며 “이 기회에 제도적인 점검을 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패닉 셀링'을 부르는 획일적인 기관의 로스컷 규정, △외국인의 이중수익 도구가 돼버린 공매도 제도, △유동성 확대보다는 증권사의 수익원으로 변질된 신용 및 미수제도, △세계 최대 도박판이란 지적을 받으며 현물시장을 뒤흔드는 선물·옵션시장, △단기실적 위주의 연기금 위탁운용사 평가방식 등은 긴급 점검과 처방이 필요한 한국 증시의 아킬레스건이다.

개인투자자와 외국인, 특히 단기성 외국 자금이 주도하면서 한국 증시는 세계에서 가장 대외변수에 취약한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다. 증시 주도권은 시가총액의 33%(작년말 기준)를 보유한 외국인이 쥐고 있고, 단기차익 실현에 치중하는 개인들(시가총액 21% 보유)이 뒤를 이으면서 주가가 펀더메털과 무관하게 급등락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이 요즘 들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관들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금융당국 내에서는 '100조 대항마'라는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연기금과 기관들의 증시 주도권을 확보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감독당국 관계자는 돲외국인 보유주식 중 3분의1 정도인 100조원만 국내자본이 가져와도 변동성 축소는 물론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집중적인 'Sell Korea'는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증시 수급구조를 바꿀수 있는 기회라는 말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수급을 꼬이게 만들어 시장의 악순환을 재생산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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