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에 안긴 '멋과 흥 풍류의 절정' 나주의 亭子

머니투데이 최병일 기자 2011.07.0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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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와 흥이 깃든 나주 정자 기행]

편집자주 남도의 강은 제각각의 색과 멋을 가지고 있지만 영산강 만큼 고즈넉한 깊이를 간직한 곳도 드물 것이다. 115km에 이르는 강물은 흘러 흘러 나주땅으로 들어서서 잠시 지친 몸을 내려놓는다. 세월의 흔적이 만들어낸 강주변의 풍경은 애잔하면서도 감상적이다. 4대강 공사로 인해 풀어헤쳐진 강주변만 아니라면 자연이 주는 넉넉함에 시간조차 놓아 둘 것만 같다. 영산강은 단지 물만 품은 것이 아니다. 강물을 바라보던 선비들의 시심과 풍류까지 넉넉하게 안고 깊은 세월을 유유히 견디어 왔다. 강의 주변에는 남도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정자가 놓여있다. 선비는 눈에 담긴 강물을 안주 삼아 술 한잔을 걸치며 시조를 한자락 쏟아 냈을 것이다.

▲안개낀 영산강 S라인의 풍류▲안개낀 영산강 S라인의 풍류


나주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가장 전라도다운 곳이다. 전라도답다는 말이 무엇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하는 것이 '거시기'하지만 전주(全州)와 나주(羅州)가 합쳐져 전라도(全羅道)된 것처럼 호남의 진수가 그대로 보이는 곳이다.

나주를 관통하는 영산강은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다. 강의 주변에는 어김없이 정자(亭子)가 남아 있다. 비록 세월의 무게로 인해 다소 퇴락해 보여도 한 시절 풍요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던 깊은 기억조차 떨구지는 못했다.



▲임제 선생과 관련이 깊은 영모정▲임제 선생과 관련이 깊은 영모정
나주의 정자기행은 회진마을 앞 언덕에 위치한 영모정에서 시작된다. 조선시대 대 문장가이자 천재문인으로 현재까지 위명을 떨치고 있는 백호 임제 선생은 이 곳 영모정에서 글을 배우고 시를 썼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라는 시는 5백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황진이를 연모했던 낭만주의자 임제가 송도를 찾았지만 이미 세상을 뜬 그녀의 죽음을 애도해 만든 시이기에 애잔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그의 재기어린 문장이 만들어진 모태와도 같은 곳이다. 원래는 귀래정이었지만 정자를 세운 임붕의 두 아들이 '어버이를 길이 추모한다'는 뜻의 영모정으로 바꾸었다.



400년의 세월을 견뎌 거목이 된 팽나무는 영모정을 호위하는 무사처럼 늠름하게 서있고 정자에 걸터 앉아 영산강을 바라보면 자연은 그대로 시가 되어 버린다. 임제 선생과 함께 했을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체취까지 느껴지는 영모정은 그래서 더욱 정겨운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지도 모른다.

순천만만 S라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면 동당리에 있는 석관정에 오르면 영산강의 S라인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실 석관정은 1998년 시멘트를 깔면서 옛 정취를 잃어버렸다. 소박하면서도 깊은 멋을 지닌 정자의 풍모는 변했지만 '영산강제일경'이라는 현판이 무색하지 않게 정자에서 본 풍경만은 일품이다. 특히 새벽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멀어진듯 가깝게 느껴지는 진경산수화가 펼쳐진다. 진달래가 피는 봄에는 수묵의 농담속에 선명한 꽃 색깔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영산강 아래 황포돛배가 뜨고 파란 하늘과 물색까지 겸비하면 이보다 더 화사한 풍경이 없을 것이다.
▲선비들이 노래와 춤을 연습했던 기오정▲선비들이 노래와 춤을 연습했던 기오정
풍류의 절정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리라. 영모정 근방의 기오정은 선비들이 춤과 노래를 배우는 공간. 요즘말로 하면 아이돌 연습생들의 연습실일 것이다. 요즘 연습실이야 자본의 냄새가 나지만 옛 선비들의 연습실에서는 흥과 한이 빚어낸 진짜 멋이 넘친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좀더 멋스러운 인생을 살고 싶은 이들이 정자에 모여서 달빛아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던 곳이다.
▲벽류정의 풍경▲벽류정의 풍경
벽류정은 정자여행의 기착지이다. 대나무와 고목으로 둘러 쌓인 벽류정은 촘촘하게 박혀있는 돌계단을 따라 올라서야 한다. 작은 동산처럼 오름위에 세워진 정자는 나주의 여타 정자와는 다소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1640년(인조 18)에 김운해가 세운 정자는 정면3칸·측면3칸 규모. 가운데 방을 두고 사방에 마루를 들였다. 골기와 팔작지붕은 처마의 흐름이 유려하다. 후면의 툇마루가 1단 높게 설치된 점이 이채롭다.

나주 문화관광해설사 이성자 씨는 이곳이 나주 정자 중에서 가장 풍광이 좋다고 한다. 온돌을 사용해 머물 수 있게 한 것도 그렇고 영산강과 작은 천이 끼어서 휘돌아가는 지점에 있는 것도 멋을 더하는 요소가 되었다.

나주의 그많은 정자에는 이제 사람들이 없다. 문은 굳게 잠겨 있고 인적조차 끊겨서인지 정자를 헤치고 들어서려면 잡초가 자란 길을 헤치고 들어가야 한다. 쇠락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어도 정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 준다.

언젠가는 사람다운 향기를 지닌 사람들이 다시모여 닫힌 문을 열고 달빛을 벗 삼아 멋스런 노래 한 자락을 구성지게 풀어놓을 것이다. 유유하게 흐르는 영산강은 흥겨운 어깨 짓을 하며 넉넉한 미소로 화답할 것이고.

문의:나주시청 문화관광과 (061)330-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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