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우 우리행장 "살려는 환자, 의사가 도와줘야"

머니투데이 대담=채원배 금융부장, 사진=이명근 정리=오상헌 기자 2011.04.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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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장 취임후 머니투데이 인터뷰… 채권단이 공동 대응해야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20일 "은행은 환자가 된 기업을 돌보는 의사"라며 "기업이 살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은행이 나서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행장은 이날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집무실에서 가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삼부토건처럼 회생 의지가 강한 기업은 채권단이 공동으로 머리를 맞대 살려내야 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 행장의 이런 발언은 최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을 만나 금융권이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한 건설사를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한 데 대한 화답이다.

이 행장은 "삼부토건은 '대기업 꼬리자르기' 사례와는 다르다"며 "일부 재벌기업이 은행들과 상의없이 계열사를 버리는 건 금융과 해당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결국은 국민들께 부담을 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순우 우리행장 "살려는 환자, 의사가 도와줘야"


아울러 "올해 기업 상시신용위험 평가에선 대기업 브랜드 고려없이 원칙에 입각해 심사를 진행하고 구조조정을 하겠다"며 "개별 기업의 자체 신용도와 상환능력이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임하신지 한 달이 다 돼 갑니다. 소회나 소감은 어떠신가요.
▷취임 이후 현장을 직접 찾아 고객들을 일일이 만나 뵙고 있습니다. '은행장 되더니 때깔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구요(웃음). 우리은행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별도의 업무 파악이나 조직 현안 보고가 필요 없어 저도 좋고 직원들도 좋습니다. 오자마자 많은 선물(?)도 받았습니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LIG건설이나 삼부토건을 포함해서요(웃음).

-2003년 카드사태 당시 우리은행 기업금융단장으로 LG카드 부실처리를 주도하셨는데 그런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때 일을 안 했으면 이번 사태에 당황했을 겁니다. 사실 2003년 당시에는 더 어려운 일을 했기 때문에 삼부토건 사태는 충분히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은행은 환자가 된 기업을 돌보는 의사입니다. 특히 환자(기업)가 살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행장인 제가 직접 실무자들과 머리를 맞대 회생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삼부토건은 채권단내에서도 이해관계가 다른 것으로 압니다.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채권단이 공동으로 풀어야 하는 사안입니다. 삼부토건 회장님을 만났더니 "다 내놓겠다. 라마다 르네상스호텔만 갖고 살려는 게 아니다"라고 확실히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다른 은행장들도 만나 뵙고 '협조융자'를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환자가 살려는 의지가 있고 의사가 목표를 갖고 하면 방법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대기업 '꼬리자르기'로 실물과 금융의 신뢰관계가 훼손됐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일부 재벌기업이 은행들과 상의없이 계열사를 버리는 건 금융은 물론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기업이 무너지고 은행이 나빠지면 결국 부담은 국민들께 돌아갑니다. 일종의 '국민 기만'입니다. 삼부토건은 '대기업 꼬리자르기'와는 다른 성격으로 봐야 합니다. 은행원 입장에서 살려는 의지가 강한 기업은 더 살려내고 싶습니다.

-건설사 줄도산의 원인이 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삼부토건 사례처럼 기본적으로 PF 대주단의 구조(Structure)가 잘못돼 있습니다. PF 대출은 사업성을 검토해 최소 4~5년 이후 이익이 난다고 보고 돈을 빌려주는 겁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초단기성 자금인데 2금융권에서 ABCP로 PF 자금을 대출 받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PF 사업 중간에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 당장 몇 천억원을 마련해 내줄 수 있는 기업은 없습니다. 다 죽게 됩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올해 기업 상시신용평가 여신 관리 기준도 바뀌나요. 우리은행의 부실자산 정리계획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기업 브랜드 고려없이 원칙에 입각한 심사와 구조조정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개별기업의 자체 신용도와 상환 능력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상시평가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겠습니다. 우리은행이 보유한 부동산 PF 자산은 사업장별로 관리해 부실여신을 신속히 정리할 겁니다. 부동산 PF 사업은 앞으로 철저한 사업성 분석으로 옥석을 골라 진행하겠습니다.

-은행 부실 PF채권을 처리하는 민간 배드뱅크 설립 방안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가요.
▷아직 정식으로 얘기를 듣지는 못 했습니다. 다만 구조가 잘 짜이고 금융권과 건설업계에 도움이 된다면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4대 금융지주 체제로 재편되면서 은행권 '리딩뱅크'(선도은행) 경쟁과 영업경쟁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자산 규모만 보고 리딩뱅크를 논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금융산업 발전 기여도나 사업 포트폴리오의 균형이 리딩뱅크의 기준이 돼야 합니다. 그런 면에선 개인적으로 우리은행의 강점인 기업금융이 은행업의 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딩뱅크가 되려면 리테일(소매금융) 만으론 안 됩니다. 기업금융이 강해야 합니다.

-해외 진출을 통한 '현지화' 정착이 은행권의 화두입니다. 전략이 있으신가요.
▷적극적으로 세계화와 현지화를 충족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전략을 펼 계획입니다. 올해 러시아와 동남아, 오세아니아, 남미 등 신흥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국내 은행의 글로벌화가 아직 요원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떤 부분부터 풀어야 할까요.
▷국내 은행들이 해외에 나가서 영업하는 데 한계가 많습니다. 우선 우리 통화가 국제통화가 아니어서 달러를 조달하고 운용하는 데 어려움이 큽니다. 영어나 해당 국가의 언어가 능통하고 영업력을 겸비한 전문인력도 태부족합니다. 은행들이 은행장보다 더 많은 연봉을 주고서라도 해외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금융권에 잇단 정보통신(IT) 전산 보안사고가 터졌습니다. 해법이 있을까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우리은행에 그런 일이 터지면 더 큰 난리가 날 겁니다. 당장 기업들이 결제를 못해 부도가 나는 사태가 생깁니다. 전산 보안 문제는 사고가 난 뒤에 후회하면 늦습니다.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IT 담당자들과 머리를 맞대로 끊임없이 시스템을 점검하고 해킹 방지를 위한 보안에 신경쓰고 있습니다.

-조만간 우리금융 (11,900원 0.0%)지주 민영화가 재추진될 것 같습니다. 우리은행은 어떤 역할을 담당할 계획인가요.
▷우리금융의 오너(소유주)인 정부가 안을 만들면 거기에 맞춰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우리은행이 민영화에 앞장선다는 얘기는 제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은행 고객이 가장 많고 네트워크도 강합니다. 이를 활용하면 충분히 민영화 과정에서 정부와 지주사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영업을 잘 하는 것도 우리금융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민영화를 수월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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