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듣기의 재발견

머니투데이 이명섭 푸르덴셜투자증권 대표 2011.04.1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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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칼럼]듣기의 재발견


니트와 청바지로 기억되는 프레젠테이션의 명수, 그리고 세계적 CEO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게는 또다른 직함이 있다. 본인이 1997년 애플의 요청으로 복귀를 하면서 주변에 스스로를 불러달라고 요청한 직함인데, 바로 CLO(Chief Listening Officer)다.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최고경청자' 정도일 것이다.

CEO(Chief Executive Officer) CFO(Chief Finance Officer) CIO(Chief Information Officer) 등은 기업 내에서 전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최고책임자에게 우리가 부여하는 호칭들이다. 스티브 잡스가 스스로를 CLO라고 불러달라고 했다는 사실은, '듣기'를 자신이 최고책임자가 되어 전사적으로 관리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왜 '말하기'가 아니고 '듣기'인가? 누구나 소통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잘 말하기'에 방점을 찍는다. 자신의 성과나 실적을 조직에 잘 알리는 자기 PR의 필요성이 강조되거나 남을 설득해 함께 목표에 동참하도록 하는 설득커뮤니케이션 관련 서적이 잘 팔리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잘 듣기' 역시 소통의 중요한 수단이지만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고, 더구나 실천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말하기는 내가 생각한 바를 전달하는 적극적 소통 패턴이고, 듣기는 소극적 소통 패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듣기에는 말하기 이상으로 다양한 패턴이 존재하고, 역시 성공과 실패가 존재한다.



'잘 듣는 것'은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것이다. 눈을 마주치고, 주의를 집중하며 그 사람의 말에 공감해주는 것. 이것은 말하는 사람에게 표현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게 해주며, 잘 들어주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공감이 생기게 해준다.

공감은 신뢰를 바탕으로 그 사람과 나 간의 유대감을 가져오게 해준다. 처음 보는 사람일 경우, 잘 듣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잘 파악할 수 있고,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적극적인 방법이 되기도 한다.

세계적인 기업 P&G의 CEO인 A G 래플리 회장은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 대화의 3분의2를 듣는데 시간을 투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많은 사람을 내 편으로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경청을 통해 조직 내 문제를 파악하고, 자신을 응원하는 아군으로 만들어주는 리더십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경청의 리더십이 이끌어내는 파급효과는 신뢰 형성, 기회 제공, 자발적 몰입의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삼성경제연구소 '목계(木鷄)를 만드는 경청 리더십', 2010년).

이 논문에 따르면 리더는 경청을 통해 직원과 신뢰를 형성하고 그 결과 기회를 제공한다. 기회를 얻은 직원은 자발적 몰입을 통해 기대 이상의 노력을 경주하게 되고 그 결과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즉, 경청의 리더십은 신뢰-기회-몰입의 발전적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시작점이고 최고의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리더의 기본 덕목(德目)인 것이다.

반면 컴퓨터나 TV에 눈을 고정하고 산만한 상태로 말을 듣는 것,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화방식이야말로 '잘 듣지 못하는 것'의 전형적인 예다. 특히 CEO들은 조직의 리더로서 가지게 되는 목표의식으로 인해 구성원들의 의견이나 생각들을 놓치지나 않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은 '귀를 기울여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조직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고, 그 신뢰와 공감을 바탕으로 조직을 경영해 나간다면 어렵고 급변하는 경영환경도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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