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EU FTA 재협상이 유일한 대안인가?

머니투데이 김기환 외교통상부 다자통상국장 2011.04.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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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기고는 3월 21일자 머니투데이에 실린 송기호 변호사 칼럼에 대한 반론 기고문입니다.

[기고]한·EU FTA 재협상이 유일한 대안인가?


경제수준 향상과 정보통신 환경 발전에 따라 우리 소비자들은 단순히 품질이 좋은 물건을 값싸게 사는 것을 넘어 언제, 어디서 어떤 대우를 받아가면서 소비할지 꼼꼼하게 따지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까다롭고 다양한 요구는 우리나라 유통산업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일상화된 기업형 수퍼마켓(SSM)이 등장해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유통산업 환경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재래시장의 영세 상인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됐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유통법 및 상생법 개정안이 마련돼 국회를 통과했다.

최근 머니투데이에 게재된 칼럼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어렵게 마련된 유통법 및 상생법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한·EU FTA를 재협상해 유통법과 상생법에 따른 조정과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재협상만이 유일한 길일까?



지난 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이룬 획기적인 성과 중 하나가 국제통상 체제에 구속력이 있는 독립적인 분쟁해결 절차를 도입한 것이다. WTO 회원국은 다른 회원국이 WTO 협정에 위배되거나 협정에 따른 이익을 침해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판단할 경우 분쟁 해결절차를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이는 한·EU FTA를 포함해 WTO 규율을 반영하고 있는 여러 FTA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분쟁해결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각 나라가 상대국 조치로 인한 시장접근 제한과 실질적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등 상당한 행정력과 비용이 소요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래서 각 국은 해당 조치의 WTO 협정 등 위반 소지가 어느 정도 확실할 뿐만 아니라 그 조치로 인한 피해의 정도가 중대하다고 판단되기 전까지는 제소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여야가 어렵게 합의해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국회 입법내용을 존중해 EU과의 협의 때마다 우리나라 전통시장과 영세상인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해왔다. EU도 유통법과 상생법이 WTO 협정 위반 소지가 있고, 한국에 대한 주요 투자자로서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분쟁보다는 상생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칼럼의 주장처럼 유통법 및 상생법이 FTA에 위반된다고 자인하면서 이미 유럽의회를 통과한 한·EU FTA를 재협상하자고 나서는 것이 과연 우리나라에 어떤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아울러 한·EU FTA가 우리나라 유통업에 진입하고자 하는 유럽 각국의 투자자에게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WTO 서비스협정은 시장 진입단계에서부터 외국인 투자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WTO 서비스협정에 따라 지난 95년부터 유통업을 개방하고 EU 국가를 포함해 WTO 회원국 모두에게 우리나라 유통업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왔다. 이러한 개방을 통한 경쟁이 우리 유통업의 발전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며 이렇게 높아진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 유통업체들이 다른 WTO 회원국의 유통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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