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CEO의 극단적 선택...'살얼음 코스닥'

머니투데이 김건우 박성희 신희은 기자 2011.03.2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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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회사도 투자자도'망연자실'…올해도 퇴출 30곳 넘을듯


-"흑자전환, '정상화' 자신했는데..."
-290억 증자 두달 뒤 '의견거절'
-시총 530억...'휴지'될 판


한 CEO의 극단적 선택...'살얼음 코스닥'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 통보를 받고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코스닥 상장사 대표가 숨졌다. 병원, 회사 관계자들과 유족들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횡령 배임에 각종 소송이 끊이지 않는 코스닥 시장, 3월말 감사보고서 제출이 마무리되면서 퇴출 쓰나미가 거세게 일고 있다. 투자자도, 상장사 임직원들도 살얼음을 걷는 듯 하다.

27일 경찰 및 회사 관계자 등에 따르면 유무선 통신장치 제조업체 씨모텍의 김모(45) 대표이사가 26일 숨졌다. 김 대표는 지난 26일 저녁께 자신의 차 안에서 자살을 시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유증 2달만에 상폐위기

씨모텍은 노트북으로 무선인터텟을 사용할 때 쓰이는 데이터모뎀을 제조하는 업체다. 주력제품은 듀얼밴드듀얼모드(DBDM)로 기존의 이동통신망인 3G 4G 와이브로를 동시에 지원하는 모뎀이다. 최근에는 차세대 통신기술인 롱텀에볼루션(LTE) 기반 제품을 개발해 선보이기도 했다.

씨모텍은 그동안 외환파생상품(키코) 손실로 어려움을 겪어오다 지난해 9월말 상품계약이 종료됐다. 이후 회사측은 LTE 연구개발 등에 집중해왔다.


씨모텍은 특히 올해 1월 LTE 관련 제품개발 등 연구개발 투자 목적으로 287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동부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주관사로 참여한 유상증자는 실권주와 잔액인수 없이 100% 주주와 개인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한 이후 2개월만에 씨모텍이 감사보고서 '의견거절'로 퇴출위기에 몰리면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 셈이다.

씨모텍은 제4이통통신사업자를 모집하는 KMI컨소시엄에도 참여, 사업 가능성과 자금마련 등을 둘러싸고 논란을 빚기도 했다. 올해 1월에는 지난해 7월 인수한 자회사인 통신기기 제조업체 제이콤을 통해 삼화저축은행 인수를 시도했다 관계법령 및 관계기관과의 협의로 인수가 무산된 적도 있다.

◇김 대표, 지난해 2월 취임...'정상화 의욕'

김 대표는 지난해 2월 최대주주로 있는 서비스업체 나무이쿼티를 통해 씨모텍 최대주주였던 이재만 전 대표이사의 지분과 경영권을 인수, 회사경영에 참여했다. 이전까지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던 씨모텍은 김 대표의 취임으로 안정을 찾았다.

김 대표는 이후 전기차 사업 진출설을 부인하면서 주력사업에 집중해 회사를 정상화시키겠다고 시장에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김 대표는 취임 이후 회사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44억3800만원을 거둬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360억1200만원으로 창사이래 처음으로 연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지난 2009회계연도까지만 해도 감사보고서 '적정'을 유지해오던 씨모텍은 지난 24일 갑작스레 2010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서 '의견거절'을 받았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씨모텍 주식을 거래정지 시켰다. 거래 정지 당시 주가는 2015원, 시가총액은 534억원에 이른다.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면서 증자 참여 주주와 일반투자자들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김 대표는 다음날까지도 회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해 대책을 강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런 대표 사망에 충격"

갑작스런 김 대표의 사망으로 씨모텍 임직원은 물론 주주들은 증시퇴출 위기에서 또 한 번의 충격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특히 LTE 시장진출과 KMI컨소시엄 참여 등을 보고 회사에 투자했던 주주들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회사 직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씨모텍 관계자는 "대표이사 횡령·배임가 나온 것도 아니고 사업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감사보고서 '의견거절'은 물론 대표이사의 자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북미최대 통신전시회인 '올랜도 CITA2011'에 회사가 공식 참여했고 주요 임원들이 현장에 동행한 가운데 LTE 태블릿을 공개하기도 하는 등 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KMI컨소시엄도 허가가 나면 여전히 투자할 의향을 갖고 있었고 사업적으로 크게 문제도 없어 대표이사 사망을 경영진이 수습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후 회사경영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폐지 사유발생 22사...보고서 미제출 감안시 퇴출 30곳 넘을 듯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자본잠식이나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12월 결산법인은 코스피증시에서 5개, 코스닥증시에서 17개 등 모두 22개다.

감사보고서 제출 시한인 23일 이후에도 여전히 감사 보고서를 내지 못한 상장사는 코스피 상장사 4곳, 코스닥 상장가 12개 등 16개사다. 제 때 감사보고서를 내지 못한 기업의 상당수가 상장 폐지됐던 사례를 감안하면 올해 30개 안팎의 상장사가 퇴출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네오세미테크 등 39개사가 무더기 퇴출됐고 2009년 40개사, 2008년 16개사가 회계감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감사의견은 적정ㆍ한정ㆍ부적정ㆍ의견거절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외부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 '부적정' 판정은 상장 폐지 사유가 되고, 해당 기업이 7일 이내에 이의신청하지 않으면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올들어 현재까지 코스피 상장사 2곳, 코스닥상장사 14곳이 의견 거절 통보를 받았다.

2009년 이후 회계감사로 상장폐지가 늘어난 건 2009년 초 상장폐지 실질심사가 도입되면서 회계감사가 엄격해진 결과라는 관측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적이 악화되면서 자본잠식이 많아진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실질심사는 감사보고서 미제출과 부도, 자본잠식 등 기존 상장폐지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분식회계나 횡령, 배임 등 상장사로 부적격한 이유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상장폐지시킬 수 있는 제도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실적 부진이 심각하진 않으면 '적정' 의견을 쉽게 받았지만 2009년부터 회계감사에서 '합격'되도 실질심사에서 걸릴 수 있게 되자 회계법인의 감사가 전보다 엄격해진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실제로 감사의견 '거절'로 상폐된 기업은 2009년 13개에서 지난해 19개로 늘었다.

증시 건전화를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장사를 퇴출하는 건 불가피하지만 일부에선 자격 미달인 기업이 증시에 쉽게 입성할 수 있는 것부터 문제라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거래소와 증권사 등 '몇 개 기업 상장'이라는 결과물에 집착한 나머지 쉽게 상장을 허용했다"며 "실적이 나쁜 기업이라도 우회상장으로 코스닥증시에 들어올 수 있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자는 "증권사들의 기업 실사는 요식적인 행위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기업이 제시한 장밋빛 전망이 실제 현실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상장시키고 보자'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회사 입장에선 억울하다는 입장도 있다. 모 코스닥기업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선 회계법인이 감사의견 '거절'이나 '부적정'을 피력하고 나면 이후 손 쓸 방법이 없다"며 "과거 CEO 횡령·배임 등이 현재까지 '족쇄'처럼 따라 다니는 것도 부담이어서 '소명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올해 또 다시 '3월 퇴출 대란'이 발생하면서 결국 손해를 입는 것은 개인 투자자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종목 대부분이 개인 비중이 60%를 넘는다"며 "정보가 부족한 개인들은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이미 빠져나간 후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회상장 11개월 만에 퇴출된 네오세미테크는 정리매매 기간에만 시가총액이 4000억원 급감해 개인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봤다.
한 CEO의 극단적 선택...'살얼음 코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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