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 보고에 준비없는 질문…'지진 상임위' 왜 열었나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2011.03.1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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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회중 '5개 상임위' 긴급 회의 개최…정부도 국회도 '형식적'

"이런 정도 얘기할 것 같으면 오늘 뭐 하러 왔나." "정부에서 (회의 소집을) 요청한 게 아니다."

일본 지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14일 긴급 소집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고받은 말이다.

윤 장관과 임종룡 차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이주열 부총재가 나왔지만 "일본 지진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일본의 피해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알맹이 없는' 보고만 이어지자 이 의원이 역정을 냈다. 윤 장관도 "국회 측에서 연락을 받고 온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가운데)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앞줄 왼쪽) 등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일본 대지진 관련 긴급현안보고에 출석해 한국인 및 일본인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유동일 기자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가운데)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앞줄 왼쪽) 등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일본 대지진 관련 긴급현안보고에 출석해 한국인 및 일본인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유동일 기자


결국 이날 회의 초점은 일본 지진 대책이 아닌 일반 경제정책에 맞춰졌다. 김성곤 재정위원장을 비롯해 이한구 한나라당, 김성곤 민주당 의원 등은 정부 인사들의 엇갈린 발언으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초과이익공유제를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강길부 한나라당 의원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정부 경제정책은 낙제점"이라는 발언에 대한 윤 장관의 의견을 물었다. 김중수 총재는 회의 모두에 현안보고를 하고 2차례 의원들의 질문에 짧게 답변한 것 외에 회의 2시간30분 동안 하릴없이 자리를 지켜야 했다.



같은 목적으로 14일 열린 지식경제위원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와 지난 16일 열린 행정안전위위원회 전체회의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경위 회의에서는 부실한 정부 보고에 의원들의 질책이 쏟아졌다. 이날 지경부는 "대일 무역에 대한 영향이 미미하고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김진표 민주당 의원과 무소속 최연희 의원은 "너무 안일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위원회마다 상정된 안건이 동일하다 보니 출석 인사도 겹쳤다. 14일 오전 교과위 전체회의에 출석했던 윤철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위원장, 홍남표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국장은 같은날 오후에는 지경위 회의에 출석해야 했다.


의원들의 전문지식이 부족해 회의가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의 장으로 흐르기도 했다. 행안위 회의에서 맹형규 행안부 장관이 "한국형 원전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의구심을 해소할 만한 추궁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임시국회 폐회 중 긴급하게 상임위 회의를 열기는 했지만 과연 지진 피해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의심하게 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회의 시간은 2시간 안팎으로 비교적 짧았지만 의원들은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고 바로 자리를 떴다. 이에 따라 마지막에는 수십 명의 공무원과 관련 기관 직원들이 배석한 가운데 국회 쪽에서는 위원장과 질문을 하는 의원 1명만 남는 장면이 매번 연출됐다.

이처럼 국회 상임위 회의가 형식적으로 흐르자 무용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국회에 상임위에 출석한 한 부처 간부 공무원은 "주말 내내 국회 보고용 자료를 만들고 바쁜 시간에 많은 공무원들이 출석했지만 소모적인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데 그쳤다"며 "국회의 감시 기능과 국민의 알권리도 중요하지만 비슷한 회의를 여러 차례 열어 많은 공무원들을 불러내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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