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발 금융위기 '안전판'이 사라진다

더벨 길진홍 기자 2011.03.09 11:05
글자크기

[thebell note]

더벨|이 기사는 03월07일(08:45)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최근 A그룹 계열 B건설사의 한 중견급 간부로부터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이 왔다. “모기업에 곧 자금 지원을 요청할 계획인데 이와 유사한 구체적인 사례와 관련 자료들을 구해줄 수 있겠냐”는 문의였다. 그는 그룹을 설득할 묘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B건설사는 공사미수금 누적으로 단기 유동성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토목사업에 치중했으나 그 이전에 확보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발목이 잡혔다.

미분양 적체로 공사미수금과 단기대여금이 급증했다. 이로 인해 차입금과 금융비용이 불어났고 현금흐름이 악화됐다. 기업어음(CP)을 발행해 운영자금을 융통해왔으나 이내 한계에 부딪혔다. 외부 자금 수혈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상적인 기업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A그룹은 지원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그룹 내부에서는 수년간 영업적자가 지속되자 건설사업을 접자는 얘기가 오고 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택시장 장기 침체로 인한 건설사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매섭다. 건설업 불황의 여파는 그동안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그룹의 안방까지 침투했다.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모기업의 계열 건설사 지원 여력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 건설업체에 '그룹'이라는 울타리는 더 이상 바람막이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룹들이 계열 건설사 지원을 주저하는 이유는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언제까지 얼마를 더 쏟아 부어야 하는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향후 실익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효성그룹은 계열사인 진흥기업의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채권은행에 손을 내밀었다. 효성은 진흥기업 인수 후 4000여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했다. 그런데도 영업실적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를 요청했다.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건설사들이 신용을 보강한 자산유동화증권의 발행금리가 치솟고 곳곳에서 BBB급 건설사의 회사채 발행이 무산됐다. 이달 중순 회사채 발행을 앞둔 그룹 계열 모 건설사의 경우 투자자 모집에 비상이 걸렸다.

그룹들은 그동안 건설사 부실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을 흡수하는 버퍼 역할을 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대부분 그룹들이 계열 건설사를 끌어안았다. 유상증자와 보증을 통해 유동성을 제공했다. 일부 그룹 오너는 사재를 털었다. 그룹 주주들의 눈치를 살피며 알게 모르게 계열사 지원이 이뤄졌다.

덕분에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부실을 최소할 수 있었다. 건설사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면서 대규모 충당금 적립부담에 직면했지만 이를 감내할만한 시간적 여유를 벌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안전판이 흔들리고 있다. 주택시장 장기 침체로 인한 건설사 부실 은 그룹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임계점에 도달했다. 계열 건설사와 동반 부실을 눈앞에 두고 그룹들이 내릴 선택은 자명하다.

주택시장이 살아나지 않는 한 제2의 진흥기업이 잇따라 나올 것이다. 이제는 그로 인한 금융시장의 충격을 대비해야 한다. 대주주의 자금지원 회피를 놓고 ‘모럴해저드’를 외친들 공허한 메아리만 울릴 뿐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