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회장님, 20억 스톡옵션은 반납하시죠"

머니투데이 김준형 증권부장 2011.03.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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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생활인' 라응찬의 알뜰한 짐 정리를 보며

라응찬 전(前)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스톡옵션을 행사할 것이라는 소식은 다시 한번 '생활인 라응찬'의 모습을 확인하게 만든다.
대한민국 대표 금융기관의 전직 수장이라는 위치를 떠나,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합법적인 권리와 보상을 찾겠다는데 시비를 가리자는 건 촌스러운 일일까.

스톡옵션은 주주자본주의가 안고있는 이른바 '대리인 문제(Agent Ploblem)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다. 주주들이 뽑은 경영자(CEO), 즉 대리인이 주주의 이익보다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이끌어가는걸 막자는 것이다. 주주가치를 높여 주가가 오르면 자신이 받는 스톡옵션 가치도 커지니 주주와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된다.



이런 본래 취지와 달리 CEO들이 막대한 보수를 챙기는 '당연급'처럼 여겨져 오다가 2007년 금융위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손질이 가해졌다. 회사나 주주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에는 이미 부여된 스톡옵션도 취소하는게 '글로벌 트렌드'가 됐다.
그런데 라응찬 전 회장에겐 이런 글로벌 트렌드가 남 이야기인 듯 하다.

금융권은 물론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게 신한지주 (46,750원 ▲3,250 +7.47%)사태였다. 상장사들이 해외 IR(투자설명회)하러 나가면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대한 질문 때문에 할 말을 제대로 못했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였다. '국격'까지 떨어뜨린 그 상흔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태의 시작과 끝인 라 전회장의 스톡옵션을, 라 전회장 재직시에 선임된 이사들이 '문제없음'이라고 결론을 냈다.
스톡옵션 규정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강화했던 게 라회장 재직시였다. 그런데 정작 '내 스톡옵션은 규정이 강화되기 이전인 2005~2008년에 지급된 것이라 문제가 없다'며 권리를 주장하고, 주주 전체의 이익을 대표해야 하는 이사회는 그걸 승인했다.

사실 규정이 생기기 전에 치고 빠지는게 금융시장의 '선수'들이다. '서브프라임'이 가져온 금융위기에서 생생하게 확인했듯이, 제도는 '선수'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피해는 일반인들 몫으로 돌아간다. 대한민국 최고 금융그룹의 전직 수장이 금융시장의 '미꾸라지 선수'들처럼 치고 빠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주주들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을 것이다.

무시당한 건 주주들뿐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퇴장을 기대하고 호소했던 신한맨들은 20몇억 '잔돈'까지 알뜰하게 챙겨가겠다는 라 전회장을 보며 "남은 후배들은 안중에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 내정자도 마찬가지다. 전임자로서 깨끗이 책상정리를 해주고 떠나기는 커녕, 또하나의 잡음을 인수인계했다. 기존 이사회는 새로 조직을 이끌어가야 할 회장의 입장을 무시했다.


무시당한 사람들을 꼽다 보니 한 명 더 떠오른다.
"당국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며 라 전회장의 영향력이 지속되는 걸 경계하고 "신한이 하는걸 지켜보겠다"고 날을 세우던 김석동 금융위원장이다. 라 전회장은 보란 듯이 여전히 신한에서는 그가 '살아 있는 권력'임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김위원장은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의 스톡옵션이 사회적 관심이 됐을 당시 금감위 감독정책 1국장으로서 금융권의 무리한 스톡옵션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던 사람이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하다.

모든걸 다 잃고 떠나는 사람이라면 모른다. 4연임 재직동안 받은 보수만 해도 수백억원에, 여기저기 뒷날을 위한 준비를 다 해둔 회장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주주, 후배직원, 후임회장, 감독당국 수장, 나아가 전체 국민까지 다 무시하면서 라 전회장이 정말로 20몇억 챙겨서 표표히 떠나고자 했을지...그래서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평생을 몸담아온 조직에 말년에 자신이 드리운 그늘을 조금이라도 거두고, '대인(大人)'의 풍모를 조금이라도 내비치며 떠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법규를 따지기에 앞서 스톡옵션을 반납하는 게 방법이다. 절차상 돈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면, 직원 주주 혹은 사회를 위해 쓰는 것도 방법일 순 있을 것이다.

인생 70 고래희(古來稀)...일흔 넘어도 욕심 버리고 사는 사람이 드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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