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봄 재촉한 '매화' 활짝…"거제에 봄이 피었네"

머니투데이 거제(경남)=최병일 기자 2011.02.24 10:27
글자크기

[미리 만나는 봄, 경남 거제]

▲거제에 핀 매화▲거제에 핀 매화


한반도 남단 거제에 매화가 폈다. 시린 추위 속에 봉긋거리고 꽃 망울을 피운 매화는 반가운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사다. 거제는 벌써 봄이 시작됐다. 야생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손길은 점차 바빠지고, 그를 지켜보는 동백은 연신 벙긋거린다. 거가대교를 넘으면 바다에서 자갈소리가 속살거리는 아름다운 섬 거제가 있다.

겨울이 물러서는 자리가 자못 아쉬웠나보다. 거제로 향하는 열차위로 사복거리며 눈이 내린다. 쌓이던 눈은 어느새 함박눈이 되었다. 눈 볼일 별로 없는 남부지방에 오랜만에 눈 풍년이 왔다. 승합차로 갈아타고 거제로 향하는 길에 지난해 12월에 개통한 거가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과 거제를 잇는 해저터널인 거가대교는 우리나라 건설기술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인간은 땅을 개척해 도로를 만들고 마침내 물길을 뚫어 터널을 만들었다. 부산에서 거제를 잇는 8.2km의 대교는 마치 웅크리고 있는 사자처럼 도도하다.

부산 가덕도와 중죽도를 연결하는 길이 3.7km 구간은 터널 구조체를 가라앉힌 후 이를 서로 접합해 터널을 만들었다고 한다. 수심 48m 라고 하니 길이에서나 깊이에서 세계 최장이다. 해저구간을 지나는 길에 수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전광판이 보인다. 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데 50m 에 이르는 바다 속을 차로 달린다니 실감이 가지 않는다.



거제는 무엇보다 해변이 아름다운 곳이다. 동쪽 해안을 따라 차를 타고 내려가면 작은 해변마을이 나타난다. 구조라리. 그 마을에는 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린 작은 초등학교가 있고 앞마당에 4그루의 매화나무가 아직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오롯하게 서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귀한 봄의 전령사들이다.

서설이 흩날리는 교정에서 피어난 매화의 모습은 마치 새초롬한 얼굴을 한 처자와도 같다. 지나치게 벙긋거리지도 않고, 수줍으면서도 도도한 모습에 푸른 봄기운이 물씬 묻어 있다.

구조라에서 망치를 넘으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소문난 학동 몽돌해변이 나타난다. 파도가 몰려와 자갈을 품었다 일시에 내보면 바다속에서는 노래가 들린다. 자갈이 파도에 부딪혀 나는 단순한 소리임에도 '자그르르' 하며 귓전을 울리는 소리 는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몽돌해변 ▲몽돌해변
오랜 세월 파도에 자신의 몸을 맡겨 깎이고 깎여 동그랗게 남은 몽돌들은 짧은 시간 복닥거리며 날을 세우고 사는 인생들에게 무언의 교훈을 주는 것 같다. 몽돌해변에 오면 날이 춥더라도 맨발로 해변가를 한번 걸어보는 것도 좋다. 차갑게 발에 와 닿는 기분 좋은 돌들의 감촉을 느끼며 해변가를 걷고 있으면 어느새 황홀한 노을이 발목을 적신다.

몽돌해변 주위에는 야생 동백림의 군락지가 있다. 원래 이맘때면 동백이 겨우내 버성겼던 몸을 추스르고 올곧하게 꽃을 피워야 하지만 이상한파로 인해 망울졌던 동백이 자기 몸을 보이지 않는다. 겨우 몇 송이. 용감하게 몸을 드리운 동백의 모습은 화려하기보다 조금은 안쓰럽다.

동백림이 자라는 동백숲에는 원래 팔색조가 자주 모습을 나타내는 곳이라고 한다. 팔색조는 세계적으로 29종 우리나라에는 1종만 있는 희귀한 여름 철새다.

이름과 같이 머리 부위는 금적석 부리 부위는 검은 색 배에는 붉은 색 날개는 파란색 바탕은 흰색으로 되어 있다. 예전에는 가끔씩 팔색조가 눈에 띄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자주 찾지 않아 팔색조 서식지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여차 홍포의 일몰▲여차 홍포의 일몰
거제의 제 일경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차에서 홍포에 이르는 해안도로에 표를 던진다. 망산의 허리를 잘라 만든 길이다. 거제도가 숨겨놓은 비경 중의 비경으로 거제도를 에두르는 700리 해안선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기도 하다.

망산 자락 아래 홍포 전망대에 오르면 소병대도 대병대도 등가도 대매물도 소매물도 어유도 국도 가익도 가왕도 등 다양한 섬들의 모습들이 펼쳐져 여행객들은 도무지 발길을 떼지 못한다. 수없이 많은 병풍들이 바다위에 세워져 있는 듯 선경같은 그림이 펼쳐진다. 이윽고 바다속으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바다는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아파한다.

해는 점점 제 몸을 길게 뽑아서 황금의 사슬을 해변가에 걸쳐놓았다. 바닷가로 고기잡이를 나섰던 배들이 긴 꼬리를 달고 항구로 귀항하는 사이 해는 마지막 산고를 치르고 있다. 지평선에 걸려 바다를 위무하던 해는 마침내 깊은 암흑 속에 자신을 던졌다.

순정한 자연이지만 거제의 역사의 켠켠에는 슬픔이 배어있다. 시청근처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한때 이념의 선을 긋고 피를 뿌렸던 야만의 기록이다. 전쟁 중 잡힌 포로들은 자신들의 성향에 따라 좌와 우를 선택해야만 했다. 밀랍으로 만든 사실감 넘치는 전시관들의 모습은 당시의 수용소 모습을 엿보는 것 같다.

당시에 무기로 쓰였던 것들은 대개 생활의 도구들이다. 울울창창 대나무는 죽창이 되어 동족의 심장을 뚫었고, 벼베기를 하는 낫은 동족의 등에 선명한 핏자국이 되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평화가 왜 지고의 가치인지를 알게 해주는 좋은 학습장이다.

▲고로쇠 수액 채위 장면▲고로쇠 수액 채위 장면
거제의 2월은 정신없이 바쁘다. 전국에서 가장 빨리 고로쇠 수액을 채취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단풍나무과의 고로쇠 나무에 고무 호스를 끼우고 수액받이를 걸쳐 놓으면 하루밤새에도 가득하니 수액이 나왔는데 올 2월에는 갈수기간이 길어지면서 수액의 양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그나마 풍성하게 내린 눈 덕분에 미네랄이 풍부하고 시원하면서도 뒷맛은 달근한 수액이 수액받이에 가득 찼다. 거제시의 고로쇠나무는 노자산 가라산 북병산 계룡산 자락에 무려 2만 그루나 자생하고 있다. 고로쇠 나무의 수액은 날씨가 쾌청하고 일교차가 15도 이상일 때 수간압(樹幹壓)에 의해 생성되는 약수다.
▲거가대교의 야경▲거가대교의 야경
거제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 하늘에는 달과 별들이 속살거리고 바다가 화답하는 거제의 밤에 또 하나의 불이 켜졌다. 거가대교의 야경이다. 불을 밝힌 거가대교의 모습은 그대로 그림이다.

불빛은 바다로 넘실거리고 마침내 둘은 하나가 되었다. 바다 속에 핀 동백처럼 화사하게 단장한 거제의 밤풍경. 그렇게 거제의 봄은 조금씩 해변을 넘어 섬으로 넘어왔다.

◆거제의 먹거리
고로쇠는 피부미용은 물론 위장병 담석증 비뇨기질환 당뇨 등 성인병 예방과 여성 산후조리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8리터 한 통에 5만원 거제고로쇠협의회010-9337-2350)거제도에서 먹는 도다리쑥국도 일품이다. 아직은 약간 철이 이르지만 이른 봄 도다리 쑥국을 먹으면 향긋한 쑥 향과 기름진 도다리의 맛이 어우려져 향그럽다.
▲도다리 쑥국▲도다리 쑥국
멍게비빔밥도 일품이다. 각종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탄 백만석(055)638-3300)이 멍게비빔밥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냉동한 멍게에 김 가루와 깨소금 참기름 등을 넣어 비벼먹는데 생선지리와 함께 내놓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