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번의 '남극 신화'에 나선 현대건설

머니투데이 이군호 기자 2011.01.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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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세종기지 완공 이어 내년부터 장보고기지 공사 착수

↑1988년 남극 세종기지 준공식 장면↑1988년 남극 세종기지 준공식 장면


현대건설 (34,800원 ▼550 -1.56%)이 22년 만에 '남극 신화' 창조에 나선다. 특히 현대건설 김중겸 사장은 1980년대 후반 세종기지 PM을 맡은데 이어 이번에는 장보고기지의 수주부터 공사까지 진두지휘하는 등 남극과 또한번의 인연을 만들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국토해양부 극지연구소, 해양연구원, 연세대 등으로 구성된 조사단에 참여, 현장 정밀조사를 위해 이달 27일 쇄빙 연구선 '아라온'을 타고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해 남극으로 향한다.



현대건설은 앞서 지난 1988년 세종과학기지를 완공, 극지 건설공사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1987년 당시 대통령 특명으로 시작된 세종기지 건설은 극지 건설공사 경험이 없는 국내 건설사에게 두려움의 땅이었다.

세종기지는 남극대륙 북쪽 사우스셰틀랜드제도의 킹조지섬 맥스웰만(Maxwell Bay)에 위치한 한국 최초의 남극 과학기지로 현대건설이 1987년 11월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중공업과 함께 일괄도급으로 수주해 시공했다.



1987년 당시 건축사업본부 부서장(부장)으로 재직했던 김 사장은 "그당시 우리나라에는 극지 공사 경험이 없었을 뿐더러 남극에 가본 사람조차 없었기 때문에 대규모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공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현대건설은 미리 가설한 구조물을 바지선에 실었고 고장에 대비, 여벌 장비까지 챙겼다. 200여명의 생필품까지 더해진 거대한 물자 수송은 시공 전부터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1987년 10월 3000톤의 바지선 HHI-1200호에 선적된 기자재와 물품은 50여대의 컨테이너와 30여종의 건설장비를 포함해 부피가 1만5000㎥에 달했다.

공사는 영하의 추위와 초속 42m로 몰아치는 강풍과 풍랑 속에 시작됐다. 바지선을 이용해 가설부두를 세우는 작업부터 내구성과 보온성을 고려해 세운 연구시설, 환경을 감안한 오·폐수 처리시설과 폐기물 소각시설, 연구원들의 생활을 고려한 담수화시설까지 현대건설의 시공 노하우가 단기간에 집약됐다.


김 사장은 "만약 한 치의 오차라도 생겨 차질이 생기면 200여명의 현장 직원들이 오지에 갇히게 되는 상황이었다"며 "한 건의 안전사고없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건설의 도전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1988년 2월17일 현대건설은 본관동, 연구동, 숙소, 중장비 보관동, 발전동, 관측동, 정비동 등으로 이루어진 세종기지 건설을 무사히 마무리지었다. 현대건설은 이제 장보고과학기지 건설을 통해 또 다른 남극신화를 써가고 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조감도↑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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