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정선재)는 이날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진모 전 기획총괄과장에게 징역 1년, 기획총괄과 직원 장모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윤리지원관실 권모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진 전 과장은 본 공소사실인 총리실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자료들을 삭제하기 이전인 지난 7월3일과 4일, 지원관실에 보관 중이던 다량의 문서를 먼저 파기하고 일부 컴퓨터 파일을 삭제했다.
실제로 진 전 과장은 기획총괄과와 점검1팀 직원들에게 즉시 컴퓨터에 저장된 각종 자료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장씨는 7월5일 오전 6시30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 사무실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외부망 컴퓨터를 이용해 USB 4개에 이레이저(East-Tec Eraser2010·컴퓨터 파일 등 삭제 프로그램)를 다운받아 저장했다.
이후 장씨는 USB를 이용해 같은날 7시52분께 김충곤 점검1팀장의 내부망 컴퓨터를, 8시16분께 직원 권모씨의 외부망 컴퓨터 등 총 9대의 점검1팀 내외부망 컴퓨터에 이레이저 프로그램을 구동·설치해 민간인 불법사찰 추진 경위와 보고 여부 등의 내용이 담긴 자료를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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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또 검찰의 총리실 압수수색이 진행되기 2일 전인 7월7일 오전, 자료삭제에 그치지 않고 저장된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손상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장씨는 점검 1팀 김 전 팀장과 원모 조사관이 사용하던 컴퓨터 하드디스크 2개와 기획총괄과 하드디스크 2개 등 총 4개의 하드디스크를 떼어내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디가우저(Degausser·하드디스크 삭제장비) 전문 업체에 맡겼다.
장씨는 순식간에 삭제된 하드디스크를 다시 들고 지원관실로 복귀했고, 다시 하드디스크를 원래 위치에 부착했다.
진 전 과장과 장씨 등은 공판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이같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7월4일부터 7일까지의 진 전 과장과 장씨의 통화내역 ▲자료가 삭제된 컴퓨터의 로그기록 ▲지원관실 별관출입 CCTV ▲또다른 기획총괄과 직원의 진술 등을 근거로 이들의 유죄를 인정했다.
특히 재판부는 "진 전 과장이 자료 삭제를 지시하고 영구히 복제할 수 없도록 '확실한 조치'를 취할 것도 지시했다"며 "진 전 과장이 장씨에게 증거삭제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확인한 것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판 과정 중 정치권과 검찰을 중심으로 제기된 '불법사찰 증거삭제 추가 정황'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요구에 도화선이 됐던 일명 '대포폰' 논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진 전 과장과 장씨가 통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당시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 소속 최모 행정관이 대포폰을 넘겼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고, '대포폰'이라는 단어 자체도 사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청와대 고위 관계자 등 '윗선'이 진 전 과장 등에게 자료 삭제를 지시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총리실이 사용연한 4년이 지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파기하기 위해 2006년 디가우저를 구입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 검찰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또 총리실이 직접 디가우저를 사용했다는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앞서 정치권 등은 "총리실이 직접 사찰 내용을 삭제한 것 아니냐"며 추가 의혹을 제기했지만, 검찰은 "총리실로부터 넘겨받은 사용대장 등을 분석한 결과, 총리실이 자체 보유한 디가우저를 이용해 증거를 삭제한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의혹을 즉시 진화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