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자료 완전삭제한 '디가우저'란?

머니투데이 뉴시스 2010.11.2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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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자료 완전삭제한 '디가우저'란?


법원이 22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자료를 삭제한 총리실 관계자 3명에게 전원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검찰의 공소사실을 바탕으로 심리한 탓에 논란이 됐던 '대포폰' 등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정선재)는 이날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진모 전 기획총괄과장에게 징역 1년, 기획총괄과 직원 장모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윤리지원관실 권모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법원이 총리실 관계자 전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증거인멸 행위가 객관적 증거와 당시 상황 등으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법원에 따르면 진 전 과장은 본 공소사실인 총리실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자료들을 삭제하기 이전인 지난 7월3일과 4일, 지원관실에 보관 중이던 다량의 문서를 먼저 파기하고 일부 컴퓨터 파일을 삭제했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은 대검 디지털포랜식센터가 삭제된 파일을 복구할 가능성을 염려해, 총리실의 수사의뢰가 진행된 7월5일, 향후 수사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한 사건들의 진행·보고 과정 등이 담긴 관련 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없애기로 장씨와 재차 공모했다.

실제로 진 전 과장은 기획총괄과와 점검1팀 직원들에게 즉시 컴퓨터에 저장된 각종 자료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장씨는 7월5일 오전 6시30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 사무실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외부망 컴퓨터를 이용해 USB 4개에 이레이저(East-Tec Eraser2010·컴퓨터 파일 등 삭제 프로그램)를 다운받아 저장했다.

이후 장씨는 USB를 이용해 같은날 7시52분께 김충곤 점검1팀장의 내부망 컴퓨터를, 8시16분께 직원 권모씨의 외부망 컴퓨터 등 총 9대의 점검1팀 내외부망 컴퓨터에 이레이저 프로그램을 구동·설치해 민간인 불법사찰 추진 경위와 보고 여부 등의 내용이 담긴 자료를 삭제했다.


이들은 또 검찰의 총리실 압수수색이 진행되기 2일 전인 7월7일 오전, 자료삭제에 그치지 않고 저장된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손상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장씨는 점검 1팀 김 전 팀장과 원모 조사관이 사용하던 컴퓨터 하드디스크 2개와 기획총괄과 하드디스크 2개 등 총 4개의 하드디스크를 떼어내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디가우저(Degausser·하드디스크 삭제장비) 전문 업체에 맡겼다.

장씨는 순식간에 삭제된 하드디스크를 다시 들고 지원관실로 복귀했고, 다시 하드디스크를 원래 위치에 부착했다.

진 전 과장과 장씨 등은 공판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이같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7월4일부터 7일까지의 진 전 과장과 장씨의 통화내역 ▲자료가 삭제된 컴퓨터의 로그기록 ▲지원관실 별관출입 CCTV ▲또다른 기획총괄과 직원의 진술 등을 근거로 이들의 유죄를 인정했다.

특히 재판부는 "진 전 과장이 자료 삭제를 지시하고 영구히 복제할 수 없도록 '확실한 조치'를 취할 것도 지시했다"며 "진 전 과장이 장씨에게 증거삭제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확인한 것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판 과정 중 정치권과 검찰을 중심으로 제기된 '불법사찰 증거삭제 추가 정황'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요구에 도화선이 됐던 일명 '대포폰' 논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진 전 과장과 장씨가 통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당시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 소속 최모 행정관이 대포폰을 넘겼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고, '대포폰'이라는 단어 자체도 사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청와대 고위 관계자 등 '윗선'이 진 전 과장 등에게 자료 삭제를 지시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총리실이 사용연한 4년이 지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파기하기 위해 2006년 디가우저를 구입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 검찰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또 총리실이 직접 디가우저를 사용했다는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앞서 정치권 등은 "총리실이 직접 사찰 내용을 삭제한 것 아니냐"며 추가 의혹을 제기했지만, 검찰은 "총리실로부터 넘겨받은 사용대장 등을 분석한 결과, 총리실이 자체 보유한 디가우저를 이용해 증거를 삭제한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의혹을 즉시 진화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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