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칼럼]G20과 아버지의 눈물

머니투데이 홍찬선 부국장겸 금융부장 2010.11.23 10:15
글자크기
[홍찬선칼럼]G20과 아버지의 눈물


2010년 11월은 변화의 시절이다.

이건희 회장의 한마디로 삼성그룹이 술렁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사장 승진을 앞두고 계열사 CEO들이 젊은 세대로 바뀔 것이 확실시된다. 은행은 기업인수(M&A) 바람이 한창이다. 우리금융 민영화를 위한 투자의향서(LOI) 제출과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이번 주 중에 이뤄진다. 5조5000억원에 이르는 현대건설 매각도 결판이 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검찰은 기업을 압수수색하고, 국세청은 세무조사에 나선다. 내년 나라 살림살이를 논의해야 하는 예산국회는 청목회에 발목이 잡혀 꼼짝 못하고 있다.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검찰에 소환됐고, 라응찬 신한지주 전 회장도 소환을 앞두고 있다. 모두가 평소 같으면 깜짝 놀랄만한 큰 사건임에도 작은 일로 여겨질 정도로 11월의 변화는 거세다.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이다

변화의 바람은 조용하지 않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과 변화물결에 떠밀려 휩쓸리는 사람, 떠나는 사람과 승진하는 사람의 희비가 엇갈리며 어수선하다. 경우에 따라선 선혈이 낭자한 칼바람이 불고, 여기저기선 자축과 원망과 체념의 술판이 벌어진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까레리나』의 첫구절)는 말처럼 세상이 무지개 빛인 사람은 드물고, 갑작스럽게 영하로 떨어진 초겨울 날씨가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많다.



지인에게서 주말에 들은 얘기는 어수선한 한국의 11월을 더욱 우울하게 한다. “고향 친구 9명이 일년에 한두 번 부부 동반으로 어울리는 친목계가 있었는데, 올해부터 계가 안됩니다. 4명이 명퇴를 한 뒤 일정한 소득이 없다며 나오지 않으니 친목계가 깨질 수밖에 없더군요…”

이런 사정이 그들에게만 있는 특수 상황이 아니라 많은 가정의 문턱에까지 다가와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입사 경쟁률이 100대1은 기본이다. 취업 전쟁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학우를 밟고 넘어가야 하는 고통을 우리의 아들, 딸들은 겪고 있다. 공식 청년실업률은 7%이지만, 입대나 대학원 진학, 고시준비 등으로 취업전쟁을 잠시 피한 젊은이까지 합한 체감 청년실업률은 23%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다.

취업전쟁과 아버지의 명퇴=이중실업


취업만 전쟁이 아니라 직장을 유지하는 것도 매일매일 피 마르게 한다. 국내의 세계적 전자회사의 연구원(30)은 벌써 40세 전에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연말만 되면 명퇴가 거론되고, 가장(家長)인 아버지마저 실업자가 되는 상황으로 몰리기 전에 스스로 살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가 동시에 일자리가 없는 이중실업에 빠지는 집안이 늘고 있다. 이중실업은 아버지의 연봉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중산층이 급속히 무너질 수 있는 위기다.

지하철 객실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사람들을 휴일 낮에만 볼 수 있었지만, 요즘엔 평일 퇴근 시간에도 자주 보는 것도 그만큼 우리의 살림살이는 어려워지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한국의 11월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밝은 쪽은 태평성대다. 우리는 바로 열흘 전에 G20 정상회담을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25개국 정상과 수많은 외신기자들에게 쿨하고 건강한 경제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의 국격(國格)을 한껏 드높였다.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에서도 선진국 형 금메달을 쓸어 담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 성장률은 6%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코스피도 16% 올랐다. 경상수지 흑자도 300억달러를 넘어서고, 삼성전자 등 대기업은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리는 등 숫자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변화의 시절인 2010년11월, G20와 아버지의 눈물 중 한국의 참모습은 어느 것일까. 변화는 물꼬를 어느 쪽으로 트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 달라진다. 실업은 쉽고 취직은 어려운 어두운 변화. 세계 어디를 가든 어깨를 펴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밝은 변화.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는 불을 보듯 뻔한데, 구체적 과정과 방법은 왜 이렇게 달라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걸까.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