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화백이 반한 <식객> 名酒, 덕산막걸리의 애환 81년

머니위크 김성욱 기자 2010.11.2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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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막걸리 대전/ 진천 덕산막걸리 르뽀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이 있다. 생전에 진천에서 살다가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는 말이다. 그만큼 진천은 살기 좋은 곳이다.

살기 좋은 땅 진천에서 만드는 막걸리가 바로 지존급으로 꼽히는 세왕주조의 '덕산막걸리'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 중 막걸리를 소재로 한 '할아버지의 금고'의 배경도 바로 세왕주조다. 지난 16일 충북 진천군 덕산면에 있는 영농조합법인 세왕주조(옛 덕산양조장)를 찾았다.



◆근대문화유산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

덕산막걸리는 지난 1929년 덕산양조장이 설립되면서 처음으로 생산을 시작해 8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시의 건물에서 막걸리를 빚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다. 현 이규행 대표는 할아버지(이장범 씨, 61년 작고)와 아버지(이재철 씨)에 이어 3대째 양조 명가의 전통을 잇고 있다.

세왕주조의 건물은 백두산의 전나무와 삼나무를 이용해 지었다. 건물 앞에는 측백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열기를 막아 한여름에도 건물을 식혀주고, 측백나무가 뿜어내는 향은 해충과 유해균의 번식을 막는 천연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 건물은 지난 2003년 문화재청 지정 등록문화재(제58호)로 지정됐다. 양조장 건물 자체가 근대문화유산인 것이다.



최고의 막걸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덕산막걸리는 긴 세월만큼이나 우여곡절을 많았다. 덕산양조장은 지난 1974년 정부 방침에 따라 충북 5개 약주 공장이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약주만 전문으로 생산하는 세왕주조를 별도로 세웠다. 이후 덕산양조장은 막걸리만 생산하다가 1990년 진천의 막걸리 양조장이 통합되면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0년 진천 합동 막걸리 양조장이 해체됐고, 세왕주조는 가까스로 덕산양조장 면허를 돌려받았다.

이규행 대표의 부인이기도 한 세왕주조의 송향주 이사는 “1990년 양조장 합병 당시 대부분 술 제조면허를 반환했지만, 아버님(2대 이재철 사장)이 면허를 반환하지 않고 있었다”며 “환원 신청을 한 지 1년 만인 2001년 12월 면허를 돌려받아 막걸리 생산을 재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덕산막걸리에 숨어있는 과학

지금의 세왕주조를 다시 일으킨 이규행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게 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문이다. 청주에서 건축업을 하던 이 대표와 송 이사 부부는 외환위기로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1998년 덕산으로 귀향해 가업을 이었다. 막걸리 면허를 돌려받은 이 대표와 송 이사는 2002년경부터 국내산 쌀을 접목한 반살균 막걸리를 개발해 시장에 출시했다.

이 막걸리는 옛 막걸리의 맛을 살렸다는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모았으나 날씨가 더워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양조장 근처에서는 출시 당시의 맛이 보전됐으나 더 외부로 나가면 금방 쉬어버린 것.

송 이사는 “균 배양 기술이 부족해 막걸리가 3일 이상 제맛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싼 수업료’를 낸 세왕주조는 다시 기술 개발에 나서 2005년 한달 이상 유지가 가능한 막걸리를 만들어 시장에 출시한다. 그러나 10여년 만에 다시 시장에 나온 ‘덕산막걸리’는 이미 세상에서 잊혀진 이름이었다. 그만큼 덕산이라는 이름으로는 판매가 힘들었다.

“우리는 자신 있게 막걸리를 만들었고 또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리점 등에서는 ‘덕산’이라는 이름으로는 팔리지 않는다며 포천막걸리의 병에 옮겨 팔았지요." 송 이사의 회고다.

이 대표가 개발한 쌀막걸리는 대통령상을 세번이나 받은 ‘명주’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비법을 그대로 재현한 결과다.

송 이사는 “우리는 단지 할아버지의 기술을 그대로 전수한 것뿐인데, 술 전문가들이 심사 때 우리의 과정을 보고 여타 막걸리와 달리 매우 과학적이라며 놀랐다”며 “덕산막걸리의 명성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하루 5000병 분량 생산, 100% 판매

세왕주조의 막걸리는 고두밥을 찌는 것부터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약 8일이 걸린다. 고두밥을 1차로 항아리에 담고 2~3일 뒤 막걸리 발효에 필요한 균이 배양된 고두밥을 2차로 넣은 후 숙성시켜 완성하게 된다.

현재 세왕주조는 매일 10독 분량의 막걸리를 빚고 있다. 약 100kg인 1독에서는 31말의 막걸리가 생산된다. 그리고 1말에서는 20리터 정도의 막걸리가 나온다. 즉 매일 6200리터의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는 것. 1.2리터 내지 1.5리터 병으로 덕산막걸리가 출시되고 있으니 하루에 약 5000병 정도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하고 있는 막걸리는 생막걸리, 살균막걸리, 검정쌀막걸리 등 크게 3종이다.

송 이사는 “특히 생막걸리는 최종 소비자가 마실 때까지 첫맛을 유지해야 한다”며 “온도변화, 보관, 유통사정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정성을 들여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막걸리의 60%는 막걸리 전문점 등에 직판하고, 30%는 대리점 등을 통해 이마트 등 매장에서 판매된다. 10%는 세왕주조의 시음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송 이사는 “주문생산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만큼 100% 판매된다”며 “특별한 영업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왕주조에서 사무직 사원은 이 대표와 송 이사, 그리고 자금을 맡고 있는 여성 과장 등 3명이 전부다.

송 이사는 “약주에 비해 막걸리는 마진이 적다”며 “마진을 높이기 위해 대리점 대신 직판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中・日로 해외수출 추진

세왕주조는 곧 본사 사옥 뒤쪽으로 공장을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현 본사가 등록문화재이기 때문에 외관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별도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공장을 내년 설 이후에 착공할 예정이다.

송 이사는 “새 공장이 완성되면 더 많은 막걸리를 빚을 수 있기 때문에 그 후에는 대리점을 다소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막걸리 발효에 쓰이는 종균의 발효 전문회사도 설립할 예정이다. 이미 ‘세왕발효’라는 이름으로 사업증을 발급받은 상태다.

해외에 덕산막걸리의 수출 계획도 세우고 있다. 최우선 타깃은 중국과 일본.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옌지(延吉)지역에 2만5000㎡ 크기의 공장 터도 봐뒀다. 고두밥 짓기 등 기술을 이수해 생막걸리를 현지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종균기술은 이전하지 않고 본사에서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에는 본사에서 직접 만들어 완제품으로 수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일본의 무역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송 이사는 “일본에 공장을 지어 생산하는 것이 아닌 만큼 생막걸리는 힘들고, 살균이나 반살균막걸리를 수출하게 될 것”이라며 “해외 수출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술의 우수성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세왕주조가 알려주는 맛있는 막걸리 마시는 법
"겨울엔 3~4일 지난 막걸리가 더 맛있다."

많은 사람들이 갓 나온 막걸리가 맛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상식이라는 것이 송향주 이사의 설명이다.

송 이사는 “일반적인 막걸리는 원액에 물을 타서 알코올 도수를 5~7도로 맞춰 나온다”며 “갓 나온 생막걸리는 아직 발효가 덜 됐기 때문에 원액과 물이 따로 놀아 맛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막걸리병에 찍힌 제조일자 당일보다 며칠이 지난 후 마셔야 맛있는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여름철에는 제조일자 다음날이 가장 맛있고, 겨울철에는 3~4일 지난 후의 막걸리가 좋다는 것이 송 이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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