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건설근로자 "싸대기(?) 먹고 일해요"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2010.11.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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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양배추 김치에 밀주 만들어 먹어, 요즘엔 삼겹살에 소주 회식 '격세지감'

중동 건설근로자 "싸대기(?) 먹고 일해요"


"'끝장'바람 맞으며 일하고 '싸대기' 먹고 피로를 풉니다."

중동의 한 건설현장에서 만난 우리나라 건설근로자의 말이다. '끝장'바람은 중동의 모래폭풍 '할라스'를 말한다. 할라스는 아랍어로 '마지막이다', '끝이다'라는 뜻으로 한번 불면 숨쉬기 곤란할 정도의 거센 모래바람이다.

'싸대기'는 사우디아라비아어로 '밀주'를 뜻한다. 술 반입이 금지된 사우디에서 술 대신 마시기 위해 만든 대체음료다. 물에 레몬이나 오렌지, 이스트를 듬뿍 넣은 다음 사막에 묻어두거나 담요에 싸둬 막걸리처럼 만들어 먹는다.



십수년간 중동에서 근무했다는 한 건설사 부장은 "단시간에 발효시킨 탓에 마신 다음날에는 정말 싸대기를 맞은 듯 두통이 심하다"며 "그래도 현장사람들끼리 고된 하루가 끝난 후 이걸로 향수와 애환을 달랬다"고 말했다.

중동 건설근로자의 고충은 이뿐만 아니다. 40~50도가 넘는 폭염 등 열악한 기후와 싸워야하고 타국의 음식, 종교,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캠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초기현장에서는 방음이 안되는 가설건물에서 양배추로 만든 김치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보다 근무환경이 훨씬 좋아졌다는 게 현장 관리자들의 말이다. 특히 국내 건설사의 진출이 활발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은 이슬람 국가로 술과 돼지고기 반입이 금지됐지만 삼겹살에 소주 회식이 가능해진지 오래다.

오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한 근로자는 "국내 휴가에서 복귀한 사람들이 삼겹살이나 낙지볶음 등을 10~20㎏씩 싸들고 오다 세관에 걸려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해 몰래 가지고 들어왔다"며 "요즘엔 주말에 두바이로 외식, 쇼핑을 나가는데 한인슈퍼나 한식당이 많이 생겨서 걱정없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사들은 직원식당에 한국인 요리사를 초빙하고 끼니마다 국내와 동일한 수준의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UAE 아부다비 현장의 건설사 한 관계자는 "타지 생활도 서러운데 먹는 것은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식재료도 모두 국내에서 공수해 온다"며 "오히려 너무 잘 먹어서 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여가생활을 위해 숙소 안에 술집, 노래방 기계, 체육관, 인터넷 게임방도 갖춰져 있다. 지난해 3월 카타르 라스라판 라포(RAPO) 현장에 파견된 현대건설 직원은 "캠프 안에는 호프집이 있어 맥주도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인터넷, 게임, 영화 등을 즐길 수 있다"며 "물론 국내만큼은 아니지만 놀러온 게 아니니 이 정도 불편쯤은 감수하고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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