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실질심사에 관한 오해들

머니투데이 김동하 기자 2010.11.0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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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의 네이키드코스닥]

상장폐지 브로커와 관련한 기사('퇴출 막아드립니다'…상폐탈출 브로커 등장)가 나간 이틀 후인 지난 3일. 익명을 요구한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 J씨가 ‘기사화를 요청한다’며 장문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J씨는 현재 투자회사를 소유하면서 투자업을 영위하고 있기도 합니다.

J씨가 경영하고 있는 상장사는 현재 상장폐지 대상에 오르거나 실질심사를 받고 있는 회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먼저 '경영진의 배임 및 횡령에 의한 상장폐지가 불공정한 사회의 전형'이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10% 내외의 지분율을 보유한 대주주나 대표이사의 횡령 및 배임 때문에 시가총액이 수백억, 수천억원에 상당하는 회사가 상장폐지되는 건 과실은 대주주나 경영진이 저지르고 책임과 손실은 수천명의 소액주주들이 떠안는 불공정한 현실이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 거래소 측은 제도를 잘 몰라서 하는 말들이라고 반박합니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횡령배임은 상장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일 뿐이라는 얘깁니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대규모 횡령배임이 드러났지만, 퇴출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한 예로 수성 (601원 ▼7 -1.15%)의 경우 내부 직원이 200억원의 돈을 횡령해 실질심사 대상에 올랐지만, 거래가 재개됐습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전현직 경영진의 횡령배임을 놓고 웃지 못 할 일들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횡령배임 혐의에 대한 고소고발이 금전적 이익을 위한 ‘협박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겁니다.

얼마 전 A사 대표이사는 회사 인수합병(M&A)을 알선했던 브로커 P씨로부터 고소를 당했습니다. P씨는 2년 전 회사 인수 금액의 10%를 수수료를 받기로 했는데, 5%밖에 받지 못했다며 2년간 이자까지 포함한 금액을 요구했습니다. P씨는 "현 경영진을 횡령배임으로 고소하면, 실질심사 들어갈 테니 각오하라"며 터무니 없는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A사 대표이사는 도저히 그 돈을 줄 수는 없다며 실질심사를 무릅쓰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거래소 측은 이 또한 시장의 '오해'라고 주장했습니다. 터무니없는 협박으로 인한 고소고발이 공시되더라도, 회사에서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실질심사 대상에 오르지는 않는다는 얘깁니다.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상장폐지 실질심사는 코스닥 시장 정화와 한국증시, 특히 코스닥 시장의 신뢰회복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도의 틈에서 기생하는 부작용들은 다시 제도의 그늘을 노리고 있습니다. 거래소나 상장위원회 소속 위원들을 잘 안다며 위기의 기업들을 유혹하는 일부 브로커들도 생겼고, 실질심사에 들어갈 수 있으니 돈을 내놓으라며 횡령에 대한 고소고발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얘기들이지만, 위기의 기업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장의 자율성'에만 의존하던 코스닥 시장은 숱한 횡령과 배임으로 얼룩지며 많은 개인투자자들을 울렸습니다. 이 같은 현실을 고치기 위해 상장폐지 실질심사가 시작됐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다시 자본주의와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 의견 중에는 실질심사 제도를 기업의 퇴출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범법자들을 처벌하고 기업의 회생을 돕는 방향으로도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상장폐지 될 기업은 워크아웃시키고, 경영이 정상화된 후에는 스팩(SPAC)과 같은 건전한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으로 지배권을 넘기자는 주장입니다.

시장의 규제와 자율성은 양립할 수 없지만, 제도를 발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여러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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