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막아드립니다'…상폐탈출 브로커 등장

머니투데이 김동하 기자 2010.11.0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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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의 네이키드코스닥]

#"상장폐지 두려우시죠? 우리가 도와드립니다"
지난 7월 어느 날. 얼마 전 상장폐지된 코스닥 G사 대표이사실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비서실에서는 회사 대표 전화로 전화가 와서 곧바로 대표이사 연결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대표이사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음과 같은 자기소개가 있었습니다.

"실질심사 받고 계시죠? 우리는 상장폐지 탈출을 도와드리는 사람입니다"
실질심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대표이사는 이들이 과연 어떻게 상폐탈출을 도와줄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실질심사위원회 교수 두 분이 우리 회사 고문이십니다. 물론 거래소 과장, 부장 모두 우리가 잘 아는 분들이죠"

일종의 '실질심사 탈출 브로커'가 새로운 '업(業)'으로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실질심사에서부터 상장폐지 이의신청까지 모든 서류작업도 대행해주겠다고 합니다.



"벌써 여러 회사들이 우리를 통해 실질심사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변호사를 포함한 우리 팀이 서류작업까지 모두 책임져 드립니다"

대표이사가 '믿을 수 없다'며 뿌리치자 이 브로커는 연락처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대표이사는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어볼지 한참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십여년간 기업을 경영해온 사람으로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상장이 폐지되자, '전화라도 걸어볼 걸…'하는 후회도 들었다고 합니다.


브로커들이 요구하는 돈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심지어 수억원대도 있다고 합니다. 상장폐지로 수백억원의 주식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 특히 벼랑 끝에 몰린 경영진들에게 브로커들은 도박의 '마지막 베팅'과도 같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의 손길을 보냅니다.

브로커들의 유혹이 강렬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상장 유지 노하우가 담긴 서류작업'을 대행해 주겠다고 하면 퇴출 위기의 기업들로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상장위원회가 상장폐지 결정을 받는 기업에 대해 개선기간을 부여한 경우, 정밀실사를 통해 상장여부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서류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페이퍼워크'에 의해 결정됩니다.

상장폐지 대란(大亂)이 펼쳐진 2010년. 한국증시에는 이처럼 '상폐탈출 브로커'들도 판을 치고 있습니다.

관련업계에서는 이 모든 상황들이 "원칙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외부 교수나 전문직 사람들이 포함된 '위원회'가 최종결정을 내리지만, 재무구조, 실적, 횡령여부 등에 있어서 명확한 퇴출기준은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계속기업'으로 인정하더라도 위원회가 인정하지 않으면 상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실제 '엠씨스퀘어'의 개발사 지오엠씨는 얼마 전 개선기간을 받고 16억5000만원의 흑자를 냈지만 퇴출됐습니다.

회사 측은 개선기간 중 현장실사 한번 오지 않고 흑자퇴출된 현실이 억울하다며 헌법소원까지 불사한다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선기간을 부여받았던 아이디엔, 테스텍, 지오멘토, 우리담배판매 등이 적자가 계속됐지만 상장이 유지됐기 때문입니다.

상장폐지된 기업이 속출하면서 납득할 만한 원칙과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원칙과 기준이 없는 곳에서 브로커들의 장난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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