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행복은 단번에 오지 않는다

머니투데이 정희경 부국장겸 산업부장 2010.10.0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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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행복은 단번에 오지 않는다


"우리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곧 불행한 것인가. 경제적 행복은 어느 수준에서 오나."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 국면을 지나면서 삶의 질이나 행복도 등이 중요한 잣대로 부상하고 있다. 정작 이들 가치는 계량화가 쉽지 않은 탓에 그 평가가 계층별, 태도별로 큰 편차를 보인다. '행복 아니면 불행'이라는, 압축성장기에 익숙해진 이분법적 시각도 평가를 엇갈리게 만든다.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부터 강조해온 '공정사회'나 재계가 다시 점검에 나선 '동반성장'이 긍정적인 발제 취지에도 상이한 파장을 몰고 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다. 공정한 사회나 함께하는 성장 자체에 반대할 이들이 없을 텐데도 개념과 척도에 대한 인식이 제각각이어서 오히려 '불공정'이나 '나홀로 성장'이 더 부각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들 새로운 화두가 애초 제기한 명분대로 자리를 잡아나가려면 무엇보다 개념을 명확히 하면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정사회'를 예로 든다면 '앞으로 5년 내 한국을 공정한 사회로 만들겠다'는 식은 피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복지 등 각 부문에서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상태에서 개념을 구체화하지 않은 채 목표를 설정하거나 그 달성 시점만 강조하면 잡음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이 최근 "공정사회는 정치이슈가 아니고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 전 사회 통념적으로 이뤄진 일을 지금의 공정사회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일단 적절한 대응으로 보인다.

'동반성장'이나 '상생' 역시 눈앞에 보이는 부진이나 미흡함만을 들어 일정 시점까지 완전히 바꾸라고 강제하는 분위기에선 그 목표 달성도, 지속적인 개선도 이끌어내기 어렵다. 자칫 큰 틀의 변화 없이 한쪽의 문제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버리는 풍선효과만 낳을 수 있다. 한 대기업에서 1차 협력업체와 2, 3차 협력업체 간 '상생'에 대한 온도차가 나타나고, 대기업별로도 거래구조가 달라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기가 간단치 않다.

'행복', 그리고 그 하위범주가 될 수 있는 '공정'을 공격적으로 추구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 만족도를 가시적으로 높이기 어려운 데는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경향도 한 몫을 한다.


이를테면 웬만한 소득과 소비, 안정을 확보한 이들도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과 비교해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다. 특정 집단이나 지역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의 저자 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은 "우리는 무조건 남들이 자기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행복해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공정사회고, 행복한 것일까. 이에 대해 모두를 만족시킬 잣대는 없는 것 같다. 대신 다수의 합의라도 얻으려면 공정이나 행복의 진전 추이를 지수화해 보는 것이 한 방법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경제행복도지수'나 정부가 검토 중인 '동반성장지수'가 그런 시도다. 물론 관건은 일정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측은 '경제행복도지수'와 관련해 일본에서도 유용한 것으로 판단되고, 한국에선 소득과 소비를 늘려 경제활력을 높이는 것이 행복도 향상의 필수요건이라고 진단했다.

행복이나 공정사회는 단번에 오기 어렵다. 아마도 가랑비에 옷이 젖고, 끊임없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지속적인 땀과 노력 끝에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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