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다만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이니

머니투데이 성화용 부국장 2010.10.0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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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종종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 과도해지면 멀쩡한 사람도 터무니 없는 오판을 하게 된다. 한 번 삐끗하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진다.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까지도 무너뜨린다. 그 사례들이 역사 속에 차고 넘친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과 이익을 탐해 하는 일이 일치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익이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얻어야 하는 것이거나 부당한 절차를 수반하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마음속 한구석 찜찜함이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익에 대한 욕심이 눈을 가린다.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명분을 만들어 합리화시킨다. 복잡한 논리로 무장한다. 그러나 그 심연에 남아있는 건 결국 '삿된 이익'이다.



권력을 통해 이익을 탐하거나 이익을 탐해 권력을 좇을 경우 착각과 오판은 훨씬 쉽게 찾아온다. 권력은 포장을 수월하게 만든다. 부당한 일을 하는 명분과 논리가 그럴 듯 해진다. 감시는 소홀하고 경각심은 희석된다. 오히려 부정한 과실을 나누고자 부추기는 세력들도 생긴다.

정치인과 재벌이 부정한 유착의 상징이던 시대는 지났다. 그 잔해가 강한 전염성으로 곳곳에 퍼진 것인지, 그나마 사회가 맑아져서 보이지 않던 것들마저 보이는 것인지, 권력과 이익의 유착은 흔하디 흔해 일상의 다반사가 돼버렸다.



급식 비리 교장 수십명이 불과 한달 전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교장들이 처음부터 몇 푼의 뇌물을 챙기겠다고 납품업자와 결탁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업자들의 회유, 망설임, 적당한 명분, 변명을 위한 논리가 교장의 권력에 얹혀져 추저분한 비리로 드러나지 않았을까.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역시 그 본질이 급식 납품 비리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일부 의사들은 적당히 권력을 즐기며 이익을 누려왔고, 결국 정부가 나서 '경조사비 20만원, 자문료 300만원, 강연료 100만원'으로 면책 범위까지 만들어 줬다. 부패가 정의를 구축하는 것 아니냐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정교한 변명으로 방어한다 해도 문제가 있다면 다시 드러날 것이다.

수뇌부의 내홍으로 명성과 신뢰를 잃은 한 금융그룹. 그 주인공들이 제각각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며 공박하고 있지만 대중들은 이미 훤히 알고 있다. 그 싸움의 주제 역시 '권력'과 '이익'일 뿐이다.


어떠한 권력에도 물욕은 깃든다. 교사와 교수, 감독과 프로듀서, 공무원, 기업인, 언론인, 경찰, 법관, 의사와 약사, 노동조합 간부, 심지어 아파트 부녀회장이나 주민 대표들이 관련된 잡음에 한번도 시끄럽지 않았던 동네가 몇이나 되던가.

이 모든 당사자들이 한번쯤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묻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스스로 이 일이 좋아서 하고 있나. 과연 그러한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순식간에 머리를 몇 바퀴 돌려 이익을 재고 자신의 권력을 측정한다. 그 방식이 부정하지 않다 해도 피곤하기 짝이 없다. 결과로서 얻어지는 이익을 사랑할 뿐 그 일을 즐기지는 못한다.

당말오대(唐末五代)의 재상 풍도(馮道)는 '다만 좋아하는 일을 행할 뿐이니(但知行好事) / 앞으로의 일은 굳이 묻지를 말라(莫要問前程)'고 노래했다. 그저 사람 노릇을 하며 살다 보면 이익은 찾아오게 되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자고 나면 왕조가 바뀌고 권력 부침이 극심했으니, 그가 살던 시절의 복잡함이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시절이야말로 '한걸음씩 착실히'가 미덕이 돼야 하는데, 너무 급하고 격하고 과한 꼴을 많이 봐 도리를 잊고 살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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