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의 멋 한옥, 부동산 한파 무풍지대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10.10.2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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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창간3주년 기획]북촌·서촌 한옥 나들이

10월 초 평일 오후, 북촌 한옥마을 관광코스. 이곳에서 서울 도심에 자리잡은 한옥 밀집지역인 가회동 일대를 찾았다.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이어지는 고즈넉한 한옥 정취가 상쾌한 가을 하늘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한눈에도 값이 나갈 듯한 카메라를 둘러맨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무리와 수다가 요란스러운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이 한옥 사이의 골목을 가득 채웠다. 일본에서 관광차 서울을 들렀다는 요시다 시게오 씨는 “도심 한가운데에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우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면서 연신 ‘스고이(멋지다)’를 연발했다.



가회동에서 삼청동에 이르는 북촌은 1200여동의 한옥이 밀집한 대표적인 전통 가옥촌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북촌을 다녀간 관광객의 수가 9만4000명에 이를 정도로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도심 '세컨드하우스' 밀집촌

가회로를 가로질러 가회동 31번지는 한옥마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특히 다섯번째 포토 스팟(사진 촬영 적격지로 표시된 지역)과 여섯번째 포토 스팟 사이의 경관은 한국의 멋을 아주 훌륭하게 드러낸다. 여섯번째 스팟에 서자 한옥들 사이로 멀리 종로 타워를 비롯한 도심의 주요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한 이곳도 해가 언덕을 넘어가면 조용해진다. 밥 짓는 냄새나 아낙의 다듬이소리가 연상될 법한 공간이지만 실제 거주하는 이는 많지 않다. 불이 켜진 집이 두집 건너 한집도 되지 않는다.

주변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골목은 이른바 ‘세컨드하우스 밀집촌’이다. 소위 돈 많은 어르신들이 주말에 잠깐 차 마시러 오는 도심 내 별장 같은 곳이다.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공방이나 갤러리로 사용하는 곳도 밤에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낮에는 북적이다가도 저녁이 되면 인기척이 사라지는 조용한 마을로 변신하는 이유다.

◆강남보다 북촌을 찾는 사람들


타워펠리스에 살던 한 제조업체 회장은 얼마 전 북촌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계동에 있는 79㎡(24평·지분면적) 한옥을 7억원 이상 주고 사들였다. 예술 계통에서 일하는 자녀들의 성화에 못 이겨 좁은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살아보니 도심과도 가깝고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집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3명의 지인들에게 이곳으로 이사 오라고 권유하고 있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불편하다고 여겨지던 한옥에 대한 시각이 점차 바뀌고 있는 것.

“한정된 재화와 역사적인 가치와 문화적 공간이라는 장점이 이곳의 인기를 유지시켜주고 있습니다.”

북촌 계동공인중개사 김재창 대표는 북촌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금방 문의차 들른 한 매수예정자의 이야기도 꺼냈다.

“캐나다 밴쿠버에 사시는 분인데, 자녀 교육도 끝나고 한국으로 복귀하려고 집을 찾고 있답니다. 인간미 없는 강남보다 이곳이 더 좋은가 봅니다. 이곳 시세가 강남에 버금갈 만큼 높은데도 말입니다.”

매수 예정자가 봤다는 집은 대지면적 198㎡(60평) 기준 15억~20억원, 495㎡(150평) 기준 38억원의 최고급 주택이었다. 상당한 고가임에도 최신식의 강남 아파트보다 이곳의 한옥이 끌리는 듯하다고 했다.

북촌의 한옥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사람까지 다양하다. 재력 있는 젊은 사람들은 주로 갤러리를 열기 위해 집을 구하고, 나이 든 구매자들은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북촌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40~50대가 많다.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동산 한파 무풍지대 서촌

“이곳은 다른 지역하고 달라요. 작년부터 거래가 늘어나더니 지금까지 한달에 4~5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평소 수요가 많지 않아 거래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 한옥이지만 서촌은 기대 이상의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서촌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박선영 크로바공인중개사 대표는 현장 분위기를 "활발하다"고 표현한다. 지난해부터 여러 중개업소에 수없이 거래동향을 물어봤지만 활발하다고 답한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이곳의 한옥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도심 접근도가 뛰어나고 인근에 경복궁, 창덕궁 등 고궁이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4대문 안에 위치한 한옥이라고는 3700여 채에 불과해 희소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시의 한옥 지원 정책도 한몫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6월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된 서촌에 대해 1억원 수준(6000만원 보조, 4000만원 무이자 융자)의 개보수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전까지 북촌, 인사동, 돈화문로 및 운현궁 주변 지구단위계획구역에만 지원하다가 한옥 수선비용 지원사업이 경복궁 서쪽까지 넓어지면서 서촌도 혜택을 받게 됐다.

따라서 서촌의 대지지분가도 북촌을 위협할 정도로 시세가 형성됐다. 서촌의 대지지분가격은 3.3㎡당 2500만~3000만원으로 북촌의 3000만~3500만원에 비해 500만원 정도 낮은 수준이다. 비교적 정비가 잘 돼있는 북촌의 경우 물건에 따라 3.3㎡당 최고 4500만원까지 가는 한옥도 있지만 서촌 역시 상당한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가격이 오르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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