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변호사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머니투데이 류철호 기자, 배준희 기자 2010.08.0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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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대륙아주 김대희 변호사


- 회사법·상법·증권관계법등 다양한 지식 조율 중요
- 워크아웃제도 전신 '부도유예협약제' 만든 주인공
- "적대적 M&A 더 늘어날 것…전문가 키워야 방어"


"기업 인수합병(M&A)이 성사되기까지는 복잡한 법률문제들이 많아 변호사들은 이 분야를 '종합법률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유능한 M&A 전문 변호사가 되려면 각기 다른 음색을 가진 악기들을 조율해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해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돼야 합니다."



국내 최고의 M&A 전문가로 통하는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김대희(57·사법시험 28회) 변호사는 M&A를 종합법률세트라고 말한다. 회사법과 상법, 형사, 행정, 증권관계법은 물론이고 지적재산권과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M&A는 쉽게 말하면 회사를 사고 팔거나 합치거나 나누는 경제활동을 말하죠. M&A가 기업 간에 한정되는 경영활동이긴 하지만 사회 및 산업구조와 인간의 의식구조 변화와 같은 시대적 조류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M&A 전문변호사라면 해당 회사의 구조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합니다. 또 관계법령에 대한 1차적인 지식에 근거해서 각 분야 전문가들을 동원하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도 반드시 필요하죠.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인수합병과 관련된 법률을 알아야 적재적소에 필요한 전문가를 배치해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김대희 변호사 @유동일 기자↑법무법인 대륙아주 김대희 변호사 @유동일 기자


김 변호사가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올 상반기 거래규모 기준으로 M&A분야 국내 1위를 기록했다. 김 변호사는 "국력이 성장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 건도 늘고 있는 만큼 창의적인 인재들이 적극적으로 도전해 영역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구원투수로 나선 경제법률가


김 변호사가 M&A 시장으로 눈을 돌린 때는 외환위기로 몸살을 앓던 1997년이었다. 그해 1월 한때 재계를 주름잡았던 한보그룹이 맥없이 쓰러졌고 3월에는 삼미그룹, 4월에는 진로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렸다. 이른바 잘나가던 기업들이 연달아 벼랑 끝으로 내몰리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강경식 경제부총리에게 대기업 부도를 막으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에 금융권은 부랴부랴 '부도유예협약'이란 처방을 내놨다. 대기업 어음은 사정이 여의치 않더라도 부도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훗날 워크아웃 제도의 전신이 된 부도유예협약제도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김 변호사다.

그는 "부도유예협약 이후 사문화해 있던 화의제도를 이용해 진로그룹 6개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화의인가를 얻어냈고 그 일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M&A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로그룹 사건은 당시 자금압박으로 어려움을 겪던 수많은 기업들 사이에서 '기적 같은 일'로 회자됐다. 경영진이 계속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채무유예 등으로 자금압박에서 벗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IMF가 촉발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위기를 맞았고 정부는 국내기업과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을 처리할 법률가를 찾게 됐다. 김 변호사가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이다. "정부가 진로그룹 사태를 성공적으로 처리한 것을 높이 평가해 기업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작업을 많이 맡겼어요. 당시만 해도 M&A전문법률가나 경제 분야를 전공한 변호사들이 많지 않았는데 경제학과 출신인데다 경제 관료들과 친분이 있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유동일 기자@유동일 기자
◇대우건설 사태에서 깨달은 '승자의 저주'

IMF 전인 2006년 11월 한참 몸집을 불리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6조5000억원에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당시 금호는 주당 1만2600원이던 대우건설 주식을 주당 2만7000원에 사들이는 파격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대우건설에 군침을 흘리던 기업들은 금호의 거침없는 행보 앞에 무릎을 꿇었고 결국 금호가 승자로 등극했다. 하지만 승리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금호는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지원받은 3조5000억원에 대한 풋백옵션 계약에 발목이 잡혔다.

김 변호사는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기업들은 M&A를 하기만하면 무조건 남는 장사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고 대우건설 매각 건이 과열 양상을 띠게 된 것도 이런 편견이 작용한 측면이 커요. 금호가 아니라 다른 기업이 무리를 해서 대우건설을 인수했더라도 아마 같은 결과가 초래됐을 겁니다. '승자의 저주'를 일깨워 준 것이죠"라고 회상했다.
@유동일 기자@유동일 기자
◇적대적M&A 제대로 대처해야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 재계에서 '적대적 M&A'의 시초로 인식되고 있는 금강고려화학(KCC)과 현대엘리베이터 간 인수합병 건을 의미 있는 사례로 꼽았다. KCC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과 함께 범(凡)현대가로 분류되고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등과 함께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 계열사다.

현대가에서 경영권 다툼이 일어난 것은 2003년의 일이었다. 당시 현대그룹은 KCC를 비롯한 범현대가에 절대적인 열세였다. KCC의 정상영 명예회장과 KCC그룹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만 해도 31%가 넘었고 범현대가의 기업들이 KCC 측을 지원하게 되면 이들이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무려 45%에 육박했다.

김 변호사는 수세에 몰려있던 현 회장의 편에서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현 회장이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30%도 채 되지 않은 상태였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현 회장의 패배는 불 보듯 뻔했다. 김 변호사는 숙고 끝에 전례가 없었던 국민주발행이란 히든카드를 내놨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만큼 국민여론에 호소해 국민들의 힘을 빌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후 KCC 측이 법원에 현대엘리베이터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국민주발행은 무산됐지만 국민여론에 부담을 느낀 범현대가가 현 회장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국내기업을 대상으로 한 해외공룡기업들의 적대적M&A 시도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현대가의 사례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외국기업들의 경우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 어떤 기업이라도 불순한 의도를 품은 외국기업의 적대적M&A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지금부터라도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육성, 적극적으로 대처해 우리들의 기업과 산업을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현장 경험이 묻어나는 김 변호사의 진심어린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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