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탐욕이 천 명을 굶긴다

머니투데이 김준형 증권부장 2010.07.28 11:19
글자크기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친구가 실직하면 경기둔화(slow down), 이웃이 실직 하면 침체(recession), 내가 실직하면 공황(depression)이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1980년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한 말이다.
거꾸로 풀어보면,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나나 이웃이 여전히 입에 제대로 풀칠하기 전에는 경제가 공황 내지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것이다.

올 상반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6%로 10년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증시에서는 상장 기업들이 2분기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하면서 코스피 지수도 연일 연중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수치들은 우리들 삶과는 따로 논다.
실질 실업률 20%대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20대 세대들은 물론이고, 해가 갈수록 교육과 주거도 해결하기 힘들어하는 월급쟁이들에게 우리 경제는 여전히 공황상태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선거유세는 한 줄이 더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던)카터가 실직하면 경기회복(recovery)"이라는 것이다. 카터의 실직이 곧 경기회복으로 이어졌는지는 논란거리이지만 어쨌든 카터는 실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친서민'을 외치고, 좀체 대통령 입에서 듣기 힘들었던 '재벌'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대기업을 닥달하고 나선 것은 레이건의 '블랙 유머'가 현직 대통령에게 주는 섬찟한 교훈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세계 경제가 글로벌 경기침체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데, 더구나 세계경제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는 한국같은 나라에서도 왜 그리 일자리 잡기는 힘들고 사람들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지, 대통령부터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서민이나 중소기업 등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새삼스런 강조는 과거 수십년간 한도를 벗어난 일방적 쏠림이 '체감 공황'상태를 고착화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진지한 고찰이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한때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론이 시대의 화두로 여겨지던 때가 있다. 10만명을 먹여살릴 능력이 있는 천재는 10만배 보상을 받아도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휩쓸었다.

그러다보니 미국같은 나라는 1980년대 40배 수준이던 일반 근로자와 최고 경영자의 평균연봉 차이가 2000년대 중반에는 400배까지 치솟았다. 월가 금융권에서는 금융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연봉 1억달러'가 현실로 인정되고 있다.

(자본에 대한 배당은 논외로 하고)순수하게 노동의 대가로 연봉 1억달러를 주기 위해선 10만달러 고액연봉자로 따져도 1000명의 일자리가 희생돼야 한다. 어느 조직이건 1000명의 도움 없이는 1명의 천재가 빛을 발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도 1명의 천재가 1000명분의 일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1000명분의 월급을 받는 '천재'가 회사를 말아먹고 사회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는 사례들을 우리는 최근 몇년간 목격해 왔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나라라고 다를 바 없고,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사회 전체의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한쪽으로 보상이 쏠리면 다른 쪽에선 배곯는 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1개 거대 기업의 막대한 수익이 수십 수백개 협력기업들에 대한 '코스트 세이빙(CS)', 좀 실감나게 말하면 '후려치기'가 없이 가능했을지도 냉정하게 돌이켜볼 일이다.

정치지도자가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걸 '비 경제논리'라고 반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강자독식' 논리야 말로 장기적으로 훨씬 큰 비용을 낳는 비경제적 오류라는게 지난 몇년간의 경험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