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처럼 반복되는 위기에 동일한 처방전도 반복된다. 바로 저금리와 재정팽창의 마술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수차례 반복된 남미의 외채위기가 통화 및 재정팽창에 그 뿌리가 있었기에 위기의 처방전에는 고금리와 재정긴축이 단골로 자리잡았다. 저금리와 재정확대는 공공의 적이자 금칙어에 속했다.
세계경제에서 재정팽창이 위기대응의 주 처방으로 들어선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오래된 이야기다. 적극적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은 상비약으로 자리잡았고, 재정의 조기집행은 매년 초 정책당국자가 반복하는 립서비스가 되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재정의 역할이 더욱 더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즉, 재정을 통해 직접 부실자산을 매입하고 자본확충을 돕는 정책이 위기대응책의 표준 수단이 되었다. 물론 이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경험이 적지 않은 배경을 마련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한 것은 재정이 건실했기 때문이다.
최근 남부유럽의 재정위기는 출구전략 실행 압력을 받던 각국 정책당국자에게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저금리와 확장적 재정기조를 좀더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반기에는 상반기에 발생한 성장률의 일시적 반등현상도 사라질 것이다. 각국에서 출구전략은 표어에만 그치고 또 몇 년간 저금리와 확장적 재정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경제전쟁을 표방하며 각국에서 전개되는 세금인하 경쟁도 더해져야 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일본에 이어 미국과 유럽의 대부분 국가가 재정건전성이 의심되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저금리와 재정팽창 조류는 모두 위험성은 얘기하지만 또 동시에 모두 자신이 스스로 고삐를 죄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려는 사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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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경계를 넘어 어떤 정권에나 저금리와 재정팽창은 달콤한 알약이다. 이런 조류를 거스를 수 있는 국가는 한때 초인플레이션으로 지옥의 문턱을 넘나든 독일 정도다. 이웃 일본이 수출마저 악화되면 어찌될지 상상해 보라. 열린 국가의 곳간을 닫고 스스로 경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