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이효리' 모두 품는 인재를 뽑자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2010.05.2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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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법고창신',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열어야

국악, '이효리' 모두 품는 인재를 뽑자


며칠전 국악공연을 재미있게 즐겼다. '제6회 창신제(創新祭)'였다. 그것은 크라운·해태제과의 락음국악단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협연하는 국악한마당이었다. 크라운·해태제과 CEO 윤영달 회장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철학이 담긴 문화경영의 일환으로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열린 행사였다. 그래서 창신제는 전통에 더해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오늘의 축제였다. 이를테면 궁중무용 '포구락'이 베풀어졌고 삼도농악이 흐드러졌다. 또 국악관현악 연주에 따라 스페인의 열정적인 플라멩코춤이 펼쳐졌다.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가 터져나왔고 국악에 오페라 가곡인 '축배의 노래'가 만개했다. 말하자면 거문고와 판소리라는 전통에 '이효리'라는 현대가 충돌하는 동시에 조화를 이루는 환상이었다.

법고창신. 약간 어려운 단어다.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연다'는 뜻이다. 연암 박지원은 한·당(漢·唐)의 글을 모방·표절하는 당시 문단풍조를 비판하고 작가가 처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 독창적 문학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을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법고에 기울지도, 창신에 기울지도 않았다.



◇법고창신, 오늘은 어제의 제자!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 즉 리더가 될 수 있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지혜에 동서가 따로 없다. '오늘은 어제의 제자다'(Today is yesterday's pupil). 서양 속담이다. 사실 전통 자체가 그때그때 새로운 이질문화를 흡수하면서 생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것을 맹목해서도 안되고 배타만 해서도 안된다. 국악과 '이효리'를 모두 품는 인재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다.

사람과 풍습은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에서 존재한다.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고 시집가던 '우리만'의 결혼풍습도 몽골이 원천이다. 아이를 낳아 금줄을 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와 요즘 어린이들이 머리를 갈래지어 땋는 댕기머리도 몽골이 기원이다. 한국여인의 치마가 중국과 달리 주름이 있고 또 둘러 입는 방식을 가진 것은 말을 타기 위한 방편에서 나온 것이었다.

'장사치' '벼슬아치'의 '치'라는 말도, '수라' '마누라'도 이제 한국어가 됐다. '댕기 풀어 맹세하는' 님과의 약속은 이미 한국인의 전통적인 사랑법이다. 만두 같은 음식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자신감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과거에 대해 표독스럽고 새것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때가 있다. 정권마다 전 정권의 문화를 무자비하게 짓밟아 온 사례가 많다.


◇'칠거지악'에 맞서는 '삼불거'

조선시대에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관행이 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언급이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자식이 없고, 음탕하고, 투기하고, 나쁜 병이 있고, 말이 많고, 도둑질돴을 하면 안된다. 이 풍습이 조선을 망친 남존여비사상으로 과장됐다. 사실은 일제식민시대에 전 정권인 조선문화를 궤멸하려는 술책의 일환이었다. '칠거지악'에 맞서는 여권(女權)이 당당히 보장되어 있었다. 바로 '삼불거'(三不去)다.

첫째, 내쫓아도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 이혼당하지 않는다. 둘째, 함께 부모의 삼년상을 치른 경우가 그렇다. 셋째, 가난했지만 혼인 후 부자가 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결혼하면 부모 모시고 사는 게 당시 풍속이었다. 또 큰 이변이 없는 한 혼인 후 가난해지기 어렵다. 그래서 사실상 이혼이 쉽지 않았다. 일본처럼 아내에게 반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여권이 상당했다. 신사임당 같은 여류 명사가 나올 수 있었다. 식민 집단세뇌교육을 교정하고 벗어날 때가 됐다.

이제 바른 전통과 미래를 함께 품는 인재를 뽑을 때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6·2 지방선거를 맞아 스스로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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