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률 0% 알면서 지방분양 왜?… "일부러"

머니투데이 송복규 기자, 최종일 기자 2010.04.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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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돼야 팔기쉬워 일부러 '깜깜이 분양"

지난 2007년 10월 강원도 춘천의 A아파트가 청약률 제로(0%)를 기록했다.

당시는 집값이 최고점(2006년 말)을 찍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여서 단 1명도 청약하지 않은 '청약률 0% 아파트'는 그야말로 빅이슈였다. 지방에 이어 서울 강남에서도 청약 저조 현상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청약률 0% 아파트 등장 소식은 그해 부동산 10대 뉴스 상위를 차지했다.

2010년 4월 지방 분양시장에선 1순위부터 3순위까지 단 1명도 청약하지 않은 청약률 0% 아파트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일까지 청약접수를 받은 대구 달서구 상인동 '대구상인 푸르지오'(594가구)의 경우 청약자가 전무했다. 앞서 지난 3월 분양한 울산 동구 전하동 '울산전하 푸르지오2차'와 지난 1월 말 공급한 대구 달서구 성당동 '두산위브'도 각각 청약률 0%를 기록했다.



청약률 0% 알면서 지방분양 왜?… "일부러"


청약률 0%만 겨우 면했을 뿐 전 주택형의 청약자가 극소수에 불과한 단지들도 수두룩하다. 대구 봉덕동 효성백년가약(1월, 259가구 모집)과 거제 수월동 엘리유리안(2월, 155가구 모집), 광주 하남동 부영사랑으로(4월, 840가구 모집) 등은 전 주택형의 청약자가 각각 2∼3명에 불과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들어 청약이 진행된 지방아파트의 청약경쟁률은 평균 0.05대 1다. 이는 100가구 모집에 평균 5명이 신청했다는 것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0.43대 1)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다.



부동산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지방에서 청약률 0% 아파트가 속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굳이 청약통장을 쓰지 않아도 돈만 주면 입주할 수 있는 미분양아파트가 널려 있어서다.

서울 등 수도권보다 청약통장 가입자수가 적은 것도 같은 이유다. 실제 올 3월 말 현재 전국의 종합저축 가입자 921만여명 중 수도권 가입자가 약 600만명을 차지한다. 청약저축 역시 전국 가입자 192만여명 가운데 130만명은 수도권 가입자이고 5대 광역시 등 지방 가입자는 60여만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백전백패'가 뻔히 예상되는 지방 분양시장에서 건설사들이 꾸준히 신규아파트를 내놓은 것은 왜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수년전 사업부지를 매입했거나 도급계약을 체결한 경우 어쩔 수없이 아파트를 분양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전한다.


대형건설사인 B사 관계자는 "요즘 청약을 실시하는 지방아파트들은 대부분 3∼4년 전부터 미루고 미뤄온 사업장들"이라며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지만 부지매입 자금을 비롯해 수년간 투입된 금융비용도 엄청나 울며겨자먹기로 분양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분양 사실이나 청약 일정 등을 알리지 않고 법정 청약기간을 대충 넘기는 '깜깜이 분양' 등의 수법도 속출하고 있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라 공개청약을 통해 입주자를 모집해야 하는 만큼 청약은 실시하되 일부러 청약률 0% 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깜깜이 분양을 거쳐 공식적으로 미분양이 된 아파트는 건설사들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팔 수 있다"며 "당첨자 발표나 정식 계약기간에 얽매이지 않고 무순위 실수요자들을 상대로 판매활동을 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깜깜이 분양을) 하는 업체가 많다"고 말했다.

지방 미분양아파트에 한해 양도소득세 감면 연장 조치가 시행되는 만큼 순위별 청약기간에 신청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건설사도 있다.

C건설사 관계자는 "분양소장이 청약을 만류하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고객들에게 청약통장은 아끼고 세제 혜택은 최대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며 "지금은 부동산경기가 좋지 않지만 4∼5년뒤 상황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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