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저축은행의 위험한 게임

머니투데이 성화용 시장총괄부장 2009.12.1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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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컴퍼니 A를 만든다. 대출을 한다. 페이퍼 컴퍼니 B를 만든다. 대출을 한다. 페이퍼 컴퍼니 C를 만든다. 또 대출을 한다. 대출을 받은 수십 개의 페이퍼 컴퍼니가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에 투자해 돈을 한 곳으로 모은다.

이렇게 하면 수천억원을 손쉽게 마련할 수 있다. 이 돈으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해외에서 자원개발 사업도 하고 합작 기업도 만든다. M&A도 한다.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대출이 부실화되지 않도록 또 대출을 해준다. 대출금으로 이자를 납입해 부실을 덮는 것이다.



투자의 주체가 되는 페이퍼컴퍼니는 오너가 소액을 출자해 설립한다. 물론 남의 이름을 빌려서 한다. 수십, 수백배의 레버리지를 일으켜 성공하면 거액을 챙길 수 있다. 실패하면 궁극적으로 대출만 부실화 될 뿐이다. 출자금 정도야 별 게 아니다.

국내 저축은행 얘기다. 이런 사례를 알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물론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다. 수순이 뻔하다. 감독당국에 적발되고 , 영업이 정지되고 , 경영정상화에 실패하고 , 자산과 부채를 가교은행에 넘긴 후, 문을 닫는다.



결국 정부가 또 엄청난 세금을 투입해 예금을 물어줘야 한다. 최근 6년여간 정부가 부실 저축은행에 투입한 예금보험기금이 3조원이 넘는다. 저축은행은 망하고 손님들은 고통받는다. 그러나 오너는 여전히 부자로 남는다.

금융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 서민들에 대한 금융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저축은행이 곁길로 새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더 문제다.

저축은행들은 펀딩이 자유롭다. 정부가 5000만원까지 예금을 보호해준다. 라이선스를 2개 가진 저축은행은 보장 한도가 사실상 두배로, 3개 가진 저축은행은 세배로 늘어난다.


시중은행보다 금리를 조금만 높이면 예금자가 줄을 선다. 수익을 내고 돈을 굴릴 곳만 있다면 외형을 늘리는 건 식은죽 먹기다. 그런데 서민들에 대한 대출로는 그게 잘 안된다. 대출시장은 거의 포화상태다.

참을성 없는 저축은행 오너들은 욕심을 부리게 된다. 눈앞에 돈이 굴러다니고 있다. 냉정히 위험을 관리하며 본업에 충실하기가 어지간한 자제력으로는 쉽지 않다.

그래서 투자은행(IB) 업무에 눈을 돌린다.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한몫에 거액을 투자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서민금융회사에 가해지는 여러가지 규제를 피하기 위한 ‘설계’가 시작된다. 페이퍼컴퍼니도 만들고 부정대출도 한다. 이익이 보장되는 딜은 없다. 실패하면 위험하다. 기술자가 붙는다. 오너의 개인 손실을 막고 최악의 경우 책임을 피할 수 있도록 구조를 짠다.

이게 바로 어쭙잖은 ‘IB형 저축은행’의 실체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위험하다. 앞서 얘기한 극악무도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상당 수 저축은행들이 이미 자본시장에서 돈 맛을 봤다.

돈이 남아도는 저축은행들은 요즘 안 끼는 딜이 없다. 뇌관으로 남아있는 부동산 개발 관련 프로젝트 파이낸스 외에도 M&A 딜에서 부터 각종 주식연계채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투자영역에 과감히 뛰어들고 있다. 대다수가 '서민대출'로는 안된다고 믿는다.

물론 ‘금융’을 제대로 하는 저축은행도 적지 않다. 은행 이상의 깐깐한 관리시스템과 효율적인 경영으로 눈길을 끄는 곳도 있다.

그러나 변칙적인 방식으로 자본시장에 뛰어든 일부가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남아 있는 한 저축은행이라는 업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희석될 수 없다. 저축은행은 정부의 지급 보증으로 예금주로부터 돈을 빌린다. 이 돈을 어디에 쓰게 할 것인가. 이게 바로 저축은행 감독정책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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